영국 런던 근교에 위치한 루턴공항이 동네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인구 약 20만 명의 소도시가 오렌지색 물결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난달 29일(이하 한국 시간)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베드퍼드셔주의 루턴에서는 프리미어리그(EPL) 승격의 꿈을 이룬 루턴 타운 선수들이 2층 버스 두 대로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팀의 상징인 오렌지색으로 치장한 팬들은 홈구장인 케닐워스로드부터 광장까지 행진하며 선수들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루턴 타운은 하루 전인 28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코번트리 시티와의 2022~2023시즌 챔피언십(2부) 플레이오프(PO) 결승전에서 120분 연장 혈투 끝에 1 대 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6 대 5로 승리해 마지막 남은 EPL 승격 티켓의 주인공이 됐다. 루턴 타운이 1부 리그 무대에 복귀하는 건 1991~1992시즌 2부 리그로 강등된 뒤 31년 만이다.
1885년 창단한 루턴 타운은 아스널(1886년 창단)보다도 오래된 13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계에서는 비운의 팀으로 통한다. 클럽의 역사를 바꿀 만한 중요한 순간마다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6~1987시즌 풋볼 리그컵(현 카라바오컵) 결승에서 아스널을 3 대 2로 꺾고 우승했지만 앞서 1985년 유벤투스-리버풀의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벌어진 훌리건 난동의 희생양이 됐다. 39명이 사망하고 450여 명이 크게 다친 당시 헤이젤 참사로 인해 잉글랜드 클럽은 5년 동안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당했다. 루턴 타운도 유럽축구연맹(UEFA)컵 출전권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1991~1992시즌에는 풋볼리그 퍼스트 디비전(당시 1부) 24개 팀 가운데 20위에 그쳐 강등되면서 1992~1993시즌 출범한 EPL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후 심각한 재정난에 휩싸여 아마추어 리그인 5부까지 추락하는 치욕을 맛봤다.
하지만 2013~2014시즌 5부에서 우승해 리그2(4부)로 승격한 루턴 타운은 2018년부터 매년 한 계단씩 올라 2019~2020시즌 챔피언십에 합류했고 이번 시즌 마침내 EPL 승격의 꿈을 이뤘다. 5부에서 EPL까지 9년 만에 오른 초고속 승격이다.
EPL에서의 첫 시즌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인 것은 당연하다. 당장 홈구장 개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다. 8일 외신에 따르면 루턴 타운은 새 시즌 첫 2~3경기를 원정으로만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1만 356명을 수용할 수 있는 케닐워스로드는 EPL에서 가장 작은 경기장으로 기록됐는데 규모뿐 아니라 1905년 개장한 만큼 시설 노후화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원정 관중석에 다다르려면 일반 주택의 뒷마당을 가로질러야 하는 특이한 구조 탓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놀림거리가 됐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케닐워스로드가 EPL 경기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약 1000만 파운드(약 164억 원)의 개보수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다.
EPL에서의 경쟁력도 고민거리다. 축구 선수 연봉 정보 사이트 캐폴로지에 따르면 루턴 타운 선수단 연봉 총액은 782만 파운드(약 128억 원)다. 손흥민(토트넘) 한 명이 받는 연봉(약 161억 원)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다음 시즌에도 EPL에 잔류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이 필수다. 루턴 타운은 EPL 승격 덕에 중계권료 등 각종 수입으로 최소 1억 7000만 파운드(약 2780억 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새 시즌 예산의 효율적 지출도 그만큼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