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 논란을 빚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9일 전격 초치했다. 이는 싱 대사가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미 동맹을 강화 중인 우리 정부를 겨냥해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고 베팅하고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며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협박성 발언을 한 데 대한 엄중한 대응 조치로 풀이된다. 싱 대사가 초치된 것은 4월 이후 약 1개월 반 만이자 윤석열 정부 들어 두 번째다.
외교부는 장호진 1차관이 이날 오전 싱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해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장 차관은 싱 대사가 다수의 언론 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책을 비판한 것은 외교사절의 우호 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차관은 싱 대사의 이번 발언이 상호 존중에 입각해 한중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켜나가려는 양국 정부와 국민의 바람에 심각하게 배치된다며 오히려 한중 우호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장 차관은 싱 대사가 외교사절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며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한국에 대한 막말 논란을 일으킨 싱 대사에 대해 “(언행이) 도를 넘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 개소 1주년 기념 포럼에서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기자들에게 “외교 관례라는 게 있고 대사의 역할은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지 오해를 확산시키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당에서도 싱 대사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전원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싱 대사의 발언은) 명백한 내정간섭이자 심각한 외교 결례”라며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공개 항의했다. 국방위원회 여당 측 간사인 신원식 의원도 “싱 대사가 마치 구한말 우리나라에 왔던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처럼 막말을 쏟아냈다”며 “오만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싱 대사의 ‘중국 베팅’ 발언과 한국 외교부의 항의에 대해 “한국 측은 어떻게 문제를 직시하고 중한 관계의 안정과 발전을 실현할지에 주안점을 두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홈페이지에 “현재 중한 관계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싱 대사가 한국 정부와 정당, 사회 각계각층과 폭넓게 접촉해 양국 관계와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의 입장과 우려를 소개하는 것은 그 직무 범위 안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싱 대사가 올해 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관저로 초청했지만 한 장관이 이를 거절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싱 대사는 2월께 한 장관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로 초대하는 만찬을 제안했다. 한 장관이 지난해 12월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싱 대사를 접견한 지 2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한 장관은 만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현호·이건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