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민족의 화려한 부활’을 기치로 내건 중국몽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9%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미국에 맞설 유일한 국가로 거론됐던 중국의 고성장 신화가 깨지고 있다. 부동산 부실과 지방정부 채무 급증, 투자자금 이탈에 따른 위안화 가치 하락, 기업들의 실적 악화 등이 서로 맞물리면서 ‘세계의 공장’이라는 옛날의 화려한 명성도 퇴색되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과의 공급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방 국가들의 제재도 한층 격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제시했다. 중국이 연간 GDP 성장률 목표를 내놓은 199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성장 둔화에 디플레이션 우려=리오프닝 효과는 기대 난망이다. 우선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중국의 5월 수출액은 2835억 달러(약 369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7.5%나 크게 떨어졌다. 중국의 월간 수출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3개월 만이다. 서방과의 공급망 마찰에 미국·일본·동남아·프랑스·이탈리아 등으로의 수출이 각각 두 자릿수 하락을 기록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제조업 경기 선행지표인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월부터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 50 아래로 떨어졌다. 올해 1~3월 기준점인 50을 넘은 중국의 제조업 PMI는 4월(49.2), 5월(48.4) 두 달 연속 위축 국면에 머무르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압력은 거세지고 있다. 5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4.6% 떨어지는 등 8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16년 5월(-7.2%) 이후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1~5월 누적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8%에 그쳤다. 중국 정부가 올해 경기 반등을 자신하면서 연간 CPI 상승률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금은 디플레이션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처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고속성장 시대가 끝났다”며 “연간 6~8%대의 고속성장세를 멈추고 2~3%대의 저성장이 굳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부실·지방정부 부채 눈덩이=중국 경제의 뇌관인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지방정부의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언제든지 중국에서 터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올해 1~5월 지방정부의 채권 발행 규모는 총 3조 540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리파이낸싱은 47% 급증한 1조 2800억 위안을 기록했는데 이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지방정부가 채권 발행을 통한 ‘돌려막기’에 급급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기존 채권을 갚지 못하면서 1~4월 지방정부 채권의 만기 원금 상환액 7916억 위안 중 실제 상환된 액수는 98억 위안으로 1.2%에 그쳤다. 지방정부 채권의 평균 잔존 만기도 2018년 4.4년에서 올해 4월 말 8.8년으로 두 배나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IMF는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총액이 자금 조달용 특수법인인 ‘LGFV’의 부채를 포함해 약 66조 위안(약 1경 2400조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LGFV가 설립한 수천 개 금융기업의 숨겨진 차입금까지 더하면 지방정부의 총부채가 약 23조 달러(약 3경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씨티그룹은 중국의 현재 상황이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투자자금 이탈·위안화 가치 하락=고성장 신화가 밑동부터 흔들리면서 해외투자가들은 ‘차이나 런’에 나서고 있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1분기 중국 채권시장에서 21조 원 가까이를 팔아치웠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중국 국채등기결산유한책임공사(CCDC)와 상하이어음교환소(SHCH)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3월 중국의 은행 간 채권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 자금이 1145억 위안(약 20조 7000억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에는 7890억 위안(약 142조 9000억 원)이 빠져나갔다.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더 높아진 미국 채권으로 자금이 몰린 요인도 작용했다.
해외 자금 이탈은 위안화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7위안이 무너졌고 이달 6일에는 7.1위안까지 뚫렸다. 중국이 달러 패권에 맞서 위안화 위상 강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실물경제와 성장률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이 GDP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시점을 2026년에서 2035년으로 늦췄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은 기존 2032년에서 7년 후퇴한 2039년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