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오랜 기간 공고히 지켜온 ‘세계의 공장’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더 이상 예전만큼의 호황이나 값싼 인건비를 기대할 수 없는 데다 미중 갈등이 격화한 이후 ‘중국산’에 대한 각종 제재가 쏟아지자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편중됐던 생산 거점을 주변 국가로 분산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속속 나서면서다. 이에 인도를 필두로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중국을 대체할 ‘제2의 생산 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컨설팅 업체 커니의 자료를 인용해 “서방 기업들이 중국 밖으로 사업을 이전하고 있다”며 “미국이 아시아로부터 들이는 저가 수입품 중 중국산의 비중이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절반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해당 비중은 50.7%로 절반을 턱걸이로 넘어섰다. 최근 5년간 중국의 수출 점유율이 10%포인트 이상 줄어든 반면 베트남의 수출 비중은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인도·대만·말레이시아 등의 점유율이 모두 증가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후 중국에 대한 미국과 동맹들의 수출 제재가 잇따르자 기업들의 탈(脫)중국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 분산에 나서면서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 국가들의 수혜가 커지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최근 2년간 글로벌 기업의 63% 정도가 중국 내 생산 기지의 40% 이상을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특히 인도는 중국과 비슷한 규모의 인구에 기반한 풍부한 노동력과 거대 내수 시장을 보유한 점이 매력으로 꼽히며 최적의 대체지로 주목받는 모습이다.
애플은 공급망 다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 중 하나다. 애플은 올해 4월 인도 뭄바이와 뉴델리에 각각 오프라인 매장을 개장한 데 이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7년 만에 인도를 방문해 투자 의지를 재확인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아이폰14 모델을 인도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아이패드 역시 중국에서 인도로 생산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JP모건은 애플이 2025년까지 인도 생산 비중을 현재 5%에서 25%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애플의 최대 협력 업체인 대만 폭스콘도 인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 4월부터 인도 신규 공장에서 아이폰을 본격 생산할 예정이며 현재 5억 달러(약 6500억 원) 규모의 에어팟 생산 공장을 추가 건설 중에 있다. 폭스콘은 최근 애플이 온라인 매장을 오픈한 베트남에서도 잇따라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있다. 애플이 베트남을 맥북 생산 거점으로 검토하는 데 따라 폭스콘이 공장을 신설해 맥북 생산 라인을 옮겨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 업체들 역시 중국 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다. 최근 일본 닛산과 프랑스 르노는 신차 공동 개발을 위해 인도 공장에 6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도요타·폭스바겐 등 주요 업체들 역시 인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한편 의류 등 경공업 기업들의 경우 생산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전하고 있다. 중국 현지 매체 이카이글로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아디다스의 신발 생산 비중은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각각 36%, 30%로 중국(15%)을 크게 앞질렀다. 나이키 역시 베트남·인도네시아의 생산 비중이 중국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제재 압박이 커지자 중국 기업들마저 위협을 느끼고 탈중국을 모색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제재망을 피할 수 있는 다른 국가로 본사를 이전하거나 해당 국가의 영주권을 얻는 방식이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사업을 운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특히 미국 등으로 진출을 꾀하는 기업들은 본사를 다른 국가로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