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로또·스피또 등 주요 복권 상품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려는 배경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논란에 있다. 발단은 즉석복권인 스피또1000 58회차다. 기재부는 2021년 스피또1000 58회차 복권에 인쇄 오류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한 후 약 20만 장을 회수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당첨 결과와 시스템상 당첨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였다. 단 회수되지 않은 잔량 약 2520만 장은 별도 공지 없이 그대로 판매됐다.
이런 사실이 올해 초 뒤늦게 드러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마침 스피또1000 58회차 1등 당첨자가 끝내 등장하지 않은 영향이 컸다. 이에 정부가 회수한 복권 20만 장에 1등 당첨권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가 오류 복권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복권 유통 데이터를 들여다본 것도 문제가 됐다. 정부와 복권수탁사업자가 당첨 복권 판매점 등 구체적 유통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올 3월 추첨된 1057회 로또는 조작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1057회 로또에서는 2등 당첨권만 664장이 쏟아졌다. 심지어 이 중 103장이 서울의 한 복권 판매점에서 나왔다. 이에 기재부는 “(추첨 조작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복권 추첨기와 추첨용 공은 경찰관 입회 하에 봉인 작업과 해제 작업을 진행해 누구도 임의로 접근할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단 내년 스피또를 기점으로 향후 로또에도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조작 논란은 다소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블록체인으로 생산 단계부터 복권 판매·유통 데이터를 암호화하면 정부와 복권수탁사업자가 당첨 복권 판매점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 블록체인 적용 시 복권 위·변조를 원천 차단하고 보안성을 높여 최근 조작 논란으로 타격 입은 신뢰성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내년부터 복권을 운영·관리하는 5기 복권수탁사업자 동행복권이 2건의 블록체인 특허를 확보해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재부는 내년 스피또에 이어 2026년 초까지 로또·연금복권에도 순차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방침이다. 기재부 측은 “핵심은 복권 판매 및 당첨 정보의 블록체인화”라며 “복권 시스템의 보안성과 신뢰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가 최근 캐나다 인쇄 복권 공급 업체인 ‘폴라드뱅크노트’와 접촉한 것도 조작 의혹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서중 기재부 복권위원회 사무처장은 지난달 ‘유럽복권총회(EL) 세미나’ 참석차 포르투갈을 찾아 폴라드뱅크노트 측과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김 처장은 면담에서 즉석복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자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폴라드뱅크노트는 미국 복권 기관 30여 곳에 인쇄 복권을 공급하는 업체다. 복권위 측은 “신규로 구축·개발할 복권 시스템에 국내 전문 기관 인증 외에 국제 인증을 추가로 받는 방안의 실효성도 검토할 것”이라며 “다각도로 (시스템) 안정성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조작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10일 150명의 시민을 초청해 로또 추첨 방송 현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 같은 규모의 인원을 대상으로 추첨 현장을 공개한 것은 로또 복권이 발행된 2002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이날 방송에는 복권위 위원장인 최상대 기재부 2차관이 직접 로또 추첨 버튼을 누르는 ‘황금손’으로 참석했다. 최 차관은 “(현장 공개는) 복권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드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추첨 전 과정을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복권 판매액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연간 복권 판매액은 2018년 약 4조 4000억 원에서 지난해 6조 4000억 원으로 최근 4년 새 2조 원 가까이 늘었다. 복권 판매액이 6조 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정부 계획대로면 내년 복권 판매액은 7조 3000억 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