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미국, 유로존보다 높은 중국이 이제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정리)’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고착화할 경우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1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들어 중국 소비자들이 대출받기를 거부하고 현금을 비축하고 있고 지출을 장려하는 정부의 지침에도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며 “지방정부 역시 막대한 빚을 제어하기 위해 공무원 임금을 삭감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디레버리징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현재 중국 비금융 부문의 총 대출액은 49조 9000억달러로 2021년 말에 비해 1조 5000억달러가 감소했다.
이는 중앙정부에서 무분별한 부채 증가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의 지방정부, 가계, 기업은 부채를 늘려 인프라에 투자하고 부동산을 사들였고 이는 초고속 경제성장의 토대가 됐다. 하지만 그만큼 부채는 빠르게 늘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중국의 정부, 민간 부문 부채(금융 부문 제외)는 지난해 3분기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96%에 달해 유로존(259%), 미국(257%) 보다도 높았다. 그동안 경제 주체들이 막대한 돈을 빌려 각종 인프라를 건설하고 부동산을 사들인 결과다.
전반적인 국가 부채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과도한 차입을 막고 해외 자산을 사들이는 민간 기업의 행태를 통제했으며 부동산 개발업자의 부채한도에도 상한선을 뒀다. 가계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자 주택담보대출을 새롭게 일으키기 보다는 기존 대출금을 갚는 쪽을 택했다. 지난해부터 빅테크, 교육 분야 기업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기업들도 대출을 받아 신규투자를 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대규모 대출을 일으켜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중국 경제주체들이 이제는 빚을 갚는 쪽으로 돌아서면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대공황 이후 세계 경제에서 45번의 디레버리징이 일어났는데, 이중 금융위기가 동반된 사례는 32건에 달했다. 다만 WSJ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중국 중앙정부가 재정적 여유가 있고 위기를 막을 의지가 있어 중국에 금융위기나 극심한 경기침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막대한 빚에 허덕이는 지방정부와 달리 중앙정부는 비교적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고성장 시대는 저물었다는 진단이다. 컨설팅회사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의 아서 크뢰버는 “중국의 성장률이 지난 10년간 연평균 6.2%에서 향후 10년간 2~4%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초반 자산 거품 붕괴가 일어난 후 기준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음에도 가계와 기업이 대출을 받지 않고 부채를 상환하는데 집중했다. 이는 수요 감소로 이어져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소시에테제네랄(SG)도 “중국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교훈을 얻어 디레버리징 심리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채무를 적극적으로 재조정해주고 가계에는 소비 촉진을 위한 직접적인 소득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리를 낮춰도 실물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게 SG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