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잔에 맥주를 따랐다. 한 모금 입에 담은 순간 생전 처음 경험하는 맛이 느껴졌다. 라거보다 진하지만 어딘지 약간 깨끗하다는 느낌. 톡 쏘는 맛 역시 기존 제품보다는 강했다. 한마디로 ‘알쏭달쏭한 맛’이었다.
이 맥주의 원료는 보리가 아닌 감자. 국내는 물론 세계를 통틀어 단 하나밖에 없다. 이 아이템으로 강원대 선후배 사이인 김규현(29)·안홍준 감자아일랜드 공동대표는 2020년 창업을 했다. 감자아일랜드의 지난해 매출액은 손익분기점(약 4억 원)을 넘어선 약 5억~6억 원 수준이다. 올해는 이 3배에 달하는 16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확신이다. 이제 겨우 3년밖에 안 된 지방 신생 기업으로는 상당한 성과다.
눈여겨볼 것은 김 대표와 안 대표 모두 전공이 독어독문학이라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다. 창업이라고 하면 이공계를 떠올리는 현실에서 사뭇 이채로운 경력이다. 김 대표는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 매장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감자 맥주로 학교에서 열린 창업 경진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며 “인문계에서 상을 받으니 당시에 교수님들이나 학생 모두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감자 맥주로 창업한 이유는 단순했다. 감자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농작물, 독어독문학의 본고장은 독일이고 독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맥주였기에 둘을 어떻게 엮어보자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사회적 배경도 있었다. 그는 “2019년에는 감자가 대풍을 이뤄 전국 곳곳에서 수없이 많이 버려졌다”며 “버려진 감자를 활용하면 지역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창업 동기를 설명했다.
창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가진 돈은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모은 1000만 원이 전부. 대안으로 찾은 게 전국에서 열리는 창업 경진 대회에 모두 참여하는 것이었다. 입상하면 상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 사업에 수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경진 대회만 열다섯 번, 정부 지원 사업에는 일흔에서 여든 번이나 노크했고 이를 통해 2억 원이라는 시드머니를 확보할 수 있었다”며 “창업은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맥주에 대해 마시는 것 말고 아는 게 없었던 인문학도가, 그것도 세상에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제품을 만든다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택한 전략이 협업었다. 강원도 누룩연구소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농업연구소 등과도 협력 체계를 갖췄다. 항토 기업인 ‘감자밭’으로부터 경영 자문도 받았다.
생산도 마찬가지다. 감자아일랜드의 자체 생산능력은 월 최대 6000ℓ, 2만 캔 정도밖에 안 된다. 국내 업체 중 생산량이 가장 적다. 그렇다고 늘릴 생각은 전혀 없다. 모자라면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전형적인 장치산업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몸집을 키우기보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힘을 쓰려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마시기 편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맥주’를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선보이는 맥주가 모두 범상치 않다. 감자·단팥·옥수수 등 구황작물로 만든 제품도 있고 사과·복숭아·토마토 등 과일 맥주도 있다. 모두 강원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원료들이다. 토마토와 단팥 맥주는 최근 열린 국제 대회에서 각각 금상과 은상을 거머쥐었다. 김 대표는 “심사위원들이 창의성을 높이 산 것 같다”며 “일부는 맛을 보고 넣지도 않은 원료를 넣은 것처럼 심사평을 남긴 위원도 있었다”고 했다.
타깃층은 분명하다. MZ세대 중 트렌디함을 추구하는 고객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상품뿐 아니라 직접 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기획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얼마 전 서울 코엑스드링크박람회에서 감자아일랜드 부스를 감자가 맥주처럼 솟아나는 섬으로 꾸미고 소주를 소쿠리에 담아 저울로 결제하는 방식을 채택해 관람객들의 줄이 끊기지 않았다는 게 주변인들의 전언이다. 김 대표는 “맛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스토리로 어느 정도 설득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획과 차별성”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