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의 '삼성 갑질' 피해 보상 역부족"… 공정위, 제재 재개

공정위, 전원회의서 동의의결안 첫 기각



삼성전자(005930)에 장기 계약을 강요하는 등 ‘갑질’한 혐의를 받는 미국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절차가 개시된다. 브로드컴이 제시한 자진 시정 방안이 삼성전자 등 피해 기업을 구제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퇴짜를 맞으면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일 전원회의에서 브로드컴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관련 최종 동의의결안을 기각하기로 결정했다고 13일 밝혔다. 동의의결이란 문제를 일으킨 사업자가 스스로 적절한 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하면 공정위는 위법 여부 등을 판단하지 않은 채 사건을 신속히 종료하는 제도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한 뒤 전원회의에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2011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브로드컴은 △구매 주문 승인 중단 △선적 중단 △기술지원 중단 등으로 삼성전자에 스마트기기 부품 공급 관련 장기계약 체결을 강제한 혐의를 받는다. 양사가 체결한 장기계약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브로드컴의 스마트기기 부품을 매년 7억 6000만 달러(약 9750억 원)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액이 이에 미달하는 경우 차액을 브로드컴에 배상해야 했다.


공정위가 브로드컴의 행위를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로 보고 심사하던 중 브로드컴은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했다. 이에 공정위는 2022년 8월 26일과 31일 두 차례 전원회의를 열어 브로드컴이 동의의결 개시 신청 당시 제출한 시정방안을 개선·보완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고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했다.


최종 동의의결안에 담긴 시정방안은 경쟁 질서 회복을 위해 △불공정한 수단을 이용한 부품 공급계약 체결 강제 금지 △거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부품 선태구건 제한 금지 △공정거래법 준법 시스템 구축 등으로 구성됐다. 거래질서를 개선하고 중소사업자와 상생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반도체·정보기술(IT) 산업 분야 전문 인력 양성 및 중소 사업자 지원(200억 원)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 및 기술 지원 확대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러한 방안이 삼성전자의 피해를 구제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동의의결을 인용하기 위한 요건인 ‘거래질서 회복’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 측은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이후 거래 질서를 회복하려면 거래 상대방에 대한 피해 보상을 고려해야 하지만 최종 동의의결안에 담긴 삼성전자에 대한 품질보증 기술지원 확대 등은 피해 보상으로 적절하지 않다”며 “브로드컴은 심의 과정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 보상 등 위원들의 제안 사항을 수용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으므로 동의의결 최종안을 기각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공정위는 브로드컴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제재 절차를 재개하게 된다. 2016년 퀄컴에 부과된 1조 원대 과징금에 버금가는 제재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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