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생태계를 확대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세계 파트너사와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자체 생태계를 구축해 장기적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충성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 고객’을 확보해나간다는 전략이다. 업계 1위인 TSMC를 추격하기 위해서는 생태계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삼성의 판단이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파운드리사업부는 △시놉시스 △케이던스 △알파웨이브세미 등 유력 반도체 인터페이스 설계자산(IP) 기업들과의 협력 범위를 대폭 넓혔다. 이들은 세계 인터페이스 IP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삼성전자가 이 기업들에 파운드리 공정 정보를 전달하면 이들은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화 IP를 개발해 팹리스 기업들에 넘기는 것이 기존 협업 방식이다.
앞으로는 정보를 제공하는 공정 범위가 늘어난다. 첨단 공정으로 분류되는 3㎚(나노미터·10억분의 1m)부터 8㎚ 공정까지 활용할 수 있는 수십 종의 IP를 협력 범위에 포함시키는 한편 인공지능(AI)과 고성능컴퓨팅(HPC) 등 협업 응용처도 확대하기로 했다.
반도체 IP는 반도체 특정 기능을 회로로 구현한 기초 라이선스를 의미한다. 반도체 제품은 수많은 IP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IP를 활용하면 제품 개발자는 처음부터 반도체를 설계할 필요가 없어서 시간과 비용 단축이 가능하다. 팹리스가 IP 업체와 협력할 경우 칩 개발부터 양산에 이르는 시간은 기존 약 3.5~5년에서 1.5~2년으로 절반 이상 줄어든다.
특히 반도체 기술 경쟁이 심화되고 설계가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제품을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 IP 회사들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작으면서도 저전력만으로 작동되는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급 IP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곽민정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칩은 누가 조기에 칩을 개발해 적기에 시장에 출시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설계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특히 파운드리 개발의 핵심인 ‘스피드 투 마켓’(Speed-to-Market) 달성을 위해서는 외부 IP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신공정 기술 협력 확대도 이뤄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프랑스 반도체 소재 업체인 소이텍과의 협력 강화 방침을 밝혔다. 소이텍은 ‘완전공핍형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FD-SOI)’ 웨이퍼를 만드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FD-SOI 공정은 웨이퍼 위에 산화막을 형성해 소자에서 발생하는 누설전류를 줄여주는 기술로 원가 절감에 탁월하다.
정기봉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최근 이 회사 주주 설명회에서 영상을 통해 “협업이 파운드리 업계에서 성공의 열쇠라고 믿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중반부터 소이텍과 협력 관계를 맺고 28나노 이상 사물인터넷(IoT), 오토모티브 분야의 중고급형 칩에 이 기술을 활용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FD-SOI 기술을 적용하는 공정들이 이후 더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협업 강화 역시 이러한 추세의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는 기존 고객사인 팹리스의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방책이다. 생태계 확장 노력을 통해 지난해 기준 삼성 파운드리의 고객 수는 2017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에는 미국 새너제이에서 파운드리 포럼을 열고 최첨단 IP 로드맵과 전략을 밝힐 예정이다. IP 파트너들을 포함해 KLA·ASML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 아마존웹서비스, 마이크로소프트 아주르 등 클라우드 업체까지 100여 개의 협력사가 포럼에 참석한다.
이 같은 생태계 강화 전략을 통해 삼성전자가 TSMC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2.4%를 기록했다. 이에 TSMC(60.1%)와의 격차는 전 분기 42.7%포인트에서 47.7%포인트로 더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