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남들 말처럼 크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어요.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피부과에 데려가고, 식탁에 올리는 음식은 모두 채식 위주의 유기농 식단으로 바꿨는데 증상이 나아지기는 커녕 심해지니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아토피 증상에 효과적인 약이 조금 더 일찍 나왔더라면 달랐을까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을 둔 서모(45)씨는 아토피피부염과 사투를 벌인지 10년이 넘었다. 뽀얗던 아들의 피부가 희미한 붉은 끼가 올라온 건 이사 후 유치원을 옮기면서다. 아들이 몸을 긁는 횟수가 차츰 늘어난다 싶더니 어느새 팔다리와 목덜미 뒤의 접히는 부위에 습진이 생겼다. 몸을 긁느라 밤잠을 설치는 아들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나 병원에 데려간 날 아토피피부염 진단을 받았고, 그때부터 아이가 크는 내내 가려움증과의 싸움이 반복됐다. 피부과에서 처음 스테로이드제제와 항히스타민제를 처방받았을 땐 나아지는 듯 했는데 곧 내성이 생겼는지 약이 듣질 않았다. 아들의 팔다리에 하얗게 각질이 올라오고 거칠어진 피부를 보면 '뭔가 잘못 먹였나' 하는 생각에 때로는 죄책감도 느꼈다. 서씨는 "피가 날듯이 긁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해 그만 좀 긁으라고 되려 화를 내기도 했다"며 "좀더 어른스럽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아토피피부염은 재발을 거듭하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급성기에는 가려움증이 심한 붉은 반점 위에 굵은 자국, 볼록한 작은 구진, 물집, 진물이 나타나고 반복적으로 피부를 긁으면 피부가 거칠고 두꺼워지면서 피부 주름이 뚜렷해지는 '태선화'가 생긴다. 심한 가려움증과 함께 붉은 색이나 갈색을 띤 결절이 생길 수도 있다.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유병률 증가의 원인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실내외 대기오염과 기후, 주거환경 변화로 인한 항원 노출 증가, 소아기 항생제 사용 증가, 서구화된 생활방식, 비만,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아토피피부염 진료인원은 100만 명이 넘었다. 10세 미만이 가장 많은 31.7%(31만 7017명)를 차지했고, 10대가 16.0%(16만 270명)로 두 번째로 많았다. 소아·청소년이 국내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아토피피부염 병변은 주로 얼굴·목·팔·손 등 눈에 보이는 민감한 부위에 생긴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에 아토피피부염을 앓는 청소년 환자들은 자신감이 낮아지고 대외활동, 교우관계 등이 위축되기 쉽다. 가려움증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 수면장애를 겪고 성장발달과 학업성취도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아토피피부염 증상이 심할수록 삶의 질이 더욱 떨어진다. 장용현 경북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아토피가 심한 청소년 환자들은 멍한 상태이거나 무표정한 경우가 많다"며 "심한 가려움증으로 잠들기 어렵거나 잠에서 자주 깨는 등의 수면장애 또는 우울 증상, 심리적 위축 등이 원인으로 짐작되는데 환자 개인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아토피피부염의 중증도는 피부 병변(습진) 면적과 부위, 증상의 경중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EASI(Eczema Area and Severity Index) 지표로 구분한다. △EASI 16점 미만이면 경증 △16~22점은 중등증, 23점 이상은 중증이다. 중등증~중증 아토피피부염은 단순히 피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에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증상이 급격히 악화돼 30세에 이르러 최고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진다. 비가역적 2형 염증반응이 활성화되면서 성인기까지 만성적으로 재발이 반복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약 26%가 청소년기(12세 이상)에 급격한 증상악화를 경험했다는 보고도 있다. 아토피피부염 치료는 일시적 증상 완화가 아니라 다양한 약리작용을 통해 피부 내 염증을 조절하고 피부장벽을 강화함으로써 악화를 방지하는 데 목표를 둔다. 경증까지는 피부에 바르는 국소제형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으나 중등증 이상부터는 전신에 작용하는 약물요법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2018년 생물학적 제제 '듀피젠트(성분명 듀필루맙)'에 이어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 시빈코(성분명 아브로시티닙), 린버크(성분명 유파다시티닙) 등 야누스인산화효소(JAK) 저해제 계열 경구약이 연달아 중증 아토피피부염 치료제로 허가를 받으며 더욱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에 활발하게 쓰이던 JAK 저해제는 체내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 생성 경로를 억제해 피부 염증·병변·가려움 등의 증상을 완화한다. 하루 한번 먹는 알약이란 점에서 주사제인 생물학적 제제보다 환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4월부터는 린버크 15㎎이 만12세 이상 중증 아토피피부염 치료에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 적용되며 청소년 환자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낮아졌다.
장 교수는 “청소년기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질환의 영향을 크게 받을 뿐 아니라 성인 아토피피부염으로의 악화를 막기 위해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오랜 기간 가려움증에 시달리며 잔뜩 움츠려 있던 청소년 환자들이 JAK 억제제를 복용한 지 몇 달 만에 표정이 달라지고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변화를 지켜보며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어 “치료해도 안 낫는 병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아토피피부염 분야에 신약이 도입되며 환자들이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한다”며 “민간요법 등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의존하기 보다는 최대한 빨리 피부과 전문의와 상의해 최적의 해법을 찾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