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바가지 논란의 중심에는 항상 통돼지 바비큐가 등장한다. 도심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유의 모양에 후각을 자극하는 내음 덕에 축제 야시장 대표음식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양과 질마저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바가지 논란을 촉발시킨 진해 군항제를 비롯한 각 지역 축제 야시장 차림표 첫 자리에는 소(小)자 4만원, 대(大)자 5만원 가격대가 사실상 고정돼 있다. 논란의 표적이지만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왜 일까.
지난 16일 오후 2시께 찾은 광주시 퇴촌면 ‘제21회 퇴촌 토마토축제’.
코로나펜데믹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이 행사는 2019년까지만 해도 사흘 동안의 일정 동안 약 30만 명이 찾을 정도로 경기 남동부를 대표하는 인기 축제다. 이날도 수천 명의 시민들이 중앙무대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공연과 토마토 체험활동을 즐기고 있었다.
축제 한 편에 자리 잡은 야시장에서는 어김없이 통돼지 바비큐가 화로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2시간 남짓 동안 지켜본 결과 통돼지 바비큐를 주문한 탁자는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열무국수나 장터국밥 등 1만원 아래의 음식을 시켜 먹은 뒤 금방 자리를 떴다. 통돼지 바비큐를 시켜 먹는 이들은 아이들과 온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나 야시장 가설무대에서 펼쳐지는 품바 공연을 즐기며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 남녀들이었다.
가설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50여개 안팎의 탁자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통돼지 바비큐가 이날 야시장의 주력 상품은 아닌 듯 싶었다.
쪽갈비삼겹살(5만원), 순대야채볶음(2만5000원), 홍어삼합(5만원), 곰장어, 낙지볶음, 곱창볶음(이상 3만원) 등 야시장에서 비교적 고가에 속하는 음식들은 관광객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점심시간대가 지난, 영상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날씨라는 것을 감안해도 영업이 잘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야시장 손님들은 지역축제 바가지 논란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축제 첫날인 만큼 지역 주민이 대부분이어서 야시장 고물가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광주시 태전동에서 부모와 함께 축제를 찾았다는 20대 여성 조수빈씨는 “시중보다 조금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행사는 지역 상권을 살리는 좋은 취지여서 지역민들이 자원봉사도 많이 한다. 가격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경제가 이날 만난 야시장 상인들은 바가지 논란에 대해 억울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야시장에서는 드물게 ‘대박이네’라는 상호를 내걸고 영업하는 60대 여성 A씨. 20여 년 동안 야시장에서 장사를 했다는 그는 코로나펜데믹으로 최근 3년 동안 변변한 수입이 없었다고 했다. 이날부터 행사가 끝나는 18일까지 사흘 동안 매일 오전 7시 문을 열어 다음날 새벽 1~2시까지 장사를 하는데 바가지 논란 여파 탓인지 벌이가 시원치 않아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외상 거래로 빚은 깔렸는데,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A씨는 영양 전통시장발 바가지 논란이 커지면서 지역 축제 야시장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에서도 무조건적인 비판만 하지 말고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인한 가격인상 요인들을 살펴달라고 읍소했다. A씨는 이날 외상거래한 명세서까지 보여주며 “인건비가 1인 당 하루 20만원이다. 5~6명을 쓴다. 재료비는 코로나 이전보다 25~30%가 늘어났다. 여기 있는 의자, 테이블, 통돼지 바비큐 그릴도 다 빌려서 한다. 100원을 가지고 장사한다면 인건비하고, 물품대여비가 30원은 차지한다. 여기에 행사를 연결해주는 곳에 주는 소개료, 주류비, 자릿세 등을 제하고 나면 내가 가져가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통돼지 바비큐 적정가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시중에서 삼겹살 1인분이 얼마나 하는가. 1만3000원 정도 하는데 양은 얼마나 되는가. 여기는 국산돼지를 쓰고 있고, 양은 2배 이상 많다. 품바 공연도 본다”며 “지난 4월 동학사 벚꽃놀이 야시장에서도 같은 가격대로 음식을 판매했는데 크게 문제되진 않았다. (바가지 씌우는)일부 상인들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광주시 쪽도 바가지 논란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시가 얻는 실익 못지않게 ‘나쁜 축제’라는 낙인이 찍힐 경우 치러야할 유·무형의 대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에 따르면 장소를 내준 퇴촌면은 부지 대여료조로 400만원을, 행사를 주관하는 토마토연합회는 입점비조로 1000만원을 상인들로부터 받는다.
시는 사전 교육을 통해 수차례 가격 인하를 유도했지만 상인들은 물가폭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내세우며 난색을 표했다. 상인들은 대신 음식 양을 늘리는 방향으로 타협안을 내놓았단다.
그렇다면 상인들이 주장하는 물가폭등은 얼마나 음식 값에 반영됐을까.
통돼지 바비큐에 쓰는 돼지고기만 놓고 보면 축산물품질평가원 가격 기준으로 2019년에 비해 올해 약 30%가 올랐다. 최저임금은 같은 기간 약 15%가 올랐다. 대박이네는 코로나펜데믹 이전 통돼지 바비큐 대자 한 접시에 4만원을 받다가 3년 만에 영업을 재개한 올해부터 5만원을 받고 있단다. 약 25%가 인상된 셈이다.
한 야시장 상인은 “코로나 끝나고 물가를 보라. 자동차 값은 얼마나 올랐다. 비행기 푯값은…"이라며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장돌뱅이 신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