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관광객 떠난 자리에 노숙자만…호텔·쇼핑몰 '엑소더스'

[美 'SF 마켓스트리트' 가보니]
펜데믹 후 통행인구 30만 감소
웨스트필드 쇼핑센터 문 닫기로
파크55호텔도 대출 상환 중단
유니언스퀘어 유령도시화 위기

16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포웰스트리트 주변 상점이 임차인을 기다리며 비어 있다. /샌프란시스코=정혜진 특파원

# 16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유서 깊은 마켓스트리트와 5번가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쇼핑몰 웨스트필드샌프란시스코센터. 대표 백화점인 ‘블루밍데일스’ ‘노드스트롬’을 비롯해 영화관 ‘센추리’ 등이 있는 번화가지만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을 이틀 앞둔 금요일 오후에도 한산했다. 특유의 나선형 에스컬레이터를 오가는 쇼핑객들은 거의 없었고 휴게용 벤치에는 홈리스들만 누워 있었다. 이날 쇼핑몰을 찾은 지역 주민 샤오후이 씨는 “금요일에 이렇게 한산한 적이 없었다”며 “다운타운에서도 이곳에 들어서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곳마저 떠나면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질 곳이 없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14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웨스트필드 쇼핑몰 앞을 행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웨스트필드는 전 세계 12개국에 78개의 쇼핑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샌프란시스코센터는 20년 넘게 자리한 지역 명소지만 최근 5억 5800만 달러(약 7140억 원)에 달하는 대출금 상환 중단을 선언했다. 웨스트필드 측은 입장문에서 “20년 넘게 샌프란시스코센터를 운영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부동산 경기를 북돋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했다”며 “매출·점유율·유동인구 등이 동시에 감소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더는 쇼핑몰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전했다. 최대 입주사인 백화점 노드스트롬이 다음 달 1일 문을 닫겠다고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제이미 노드스트롬 노드스트롬 최고매장책임자는“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활력이 최근 몇 년간 극적으로 변화하며 매장 방문객 수와 우리의 운영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웨스트필드와 한 블록 떨어져 있는 유니언스퀘어의 최대 호텔인 파크55호텔도 지난주 7억 2500만 달러의 대출 상환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다운타운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든 탓이다. 이에 따라 이 호텔은 JP모건체이스 반환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호텔 앞에 주차한 차를 찾기 위해 한 블록 내려가자 사거리의 식당들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곧 문을 닫을 식당 앞에는 홈리스들이 서너 명씩 누워 있어 통행이 쉽지 않았다.



14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웨스트필드쇼핑몰 앞을 행인들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처럼 팬데믹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최대 중심이었던 유니언스퀘어를 중심으로 ‘유령 도시’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2020년 이후 최소 26개 매장이 문을 닫은 데 이어 7곳이 추가로 영업을 종료할 방침이다. 상업용 부동산 업체인 커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유니언스퀘어의 공실률은 올 1분기 15.5%로 전년 동기(14.2%) 대비 상승했다. 가장 큰 이유는 팬데믹 이후 주민들의 이탈 현상이다. 미 인구조사국 통계를 보면 2020년 4월부터 지난해 7월 사이에 샌프란시스코 인구가 7.1%나 줄었다. 원격근무로 도시의 통행량이 크게 줄어드는 동시에 이 기간 홈리스가 대폭 늘어났다. 웨이드 로즈 SF상인연합회장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다운타운 통행 인구가 30만 명 이상 줄었다”며 “동시에 도시의 재산 범죄가 늘고 노숙자가 늘어난 것 역시 통행량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했다.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기업의 본사가 모여 있는 캘리포니아애비뉴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의 대표 건물로 꼽히는 555캘리포니아빌딩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52층짜리 이 빌딩은 모건스탠리를 비롯해 투자은행 UBS, 뱅크오브아메리카 등과 테크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입주해 있는 등 탄탄한 임차인 리스트를 자랑하며 현재 사무 공간 중 93%가 차 있다. 하지만 모건스탠리를 비롯해 로펌 커크랜드앤드엘리스 등의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건물 소유주인 보르나도부동산신탁과 도널드 트럼프 부동산 업체는 이 건물 매매 당시 12억 달러의 대출금 상환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 건물에 입주한 한 금융회사 소속 직장인은 “이곳에서 20년간 일했지만 지금처럼 무서운 상황은 없었다”며 “건물이 이렇게 비어 있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16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 주변. /샌프란시스코=정혜진 특파원

마크 잰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사람들이 더 이상 오피스나 리테일 매장을 찾지 않으면 건물주들은 임대 소득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높은 확률로 해당 대출에 대한 손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금융 시스템에 또 다른 위험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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