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의 두 번째 전용 전기차 ‘EV9’은 세계 최초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하지만 대형 전기차라는 수식어 만으로는 EV9의 정체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다. EV9은 큼직한 차체뿐 아니라 고급 사양으로 무장한 ‘플래그십 전기차’로 보는 게 더 적합했다.
13일 경기 하남에서 충남 부여까지 약 200㎞ 구간을 달리는 내내 EV9의 고급스러움과 주행성능에 매료됐다. 우선 큼직하면서도 매끈한 차체가 인상적이었다. 외관에선 웅장함이 돋보인다. 전면부에는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 등 다양한 조명이 깔끔한 차체 면과 조화를 이뤄 미래 지향적인 인상을 준다. 곧게 뻗은 선으로 구현한 차체는 단단한 이미지를 연출해 SUV 특유의 강인함을 담아냈다.
실내는 탁 트인 개방감이 느껴진다. 편평한 바닥과 3100㎜에 이르는 긴 휠베이스(축간거리)로 공간을 극대화해 무릎과 발이 움직일 공간이 넉넉하다. 특히 운전석에 자리하는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는 세 개의 화면이 다양한 정보를 전달한다. 처음엔 너무 많은 정보값이 제공돼 정신이 없다가도 익숙해지면 편안한 주행이 가능하다.
EV9의 진가는 운전할 때 나온다. 압도적인 승차감과 주행 성능을 제공해서다. 큼직한 덩치 탓에 ‘운전하기 까다롭겠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일단 운전석에 오르면 기우에 불과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드러운 가속력과 각종 안전 사양으로 무장한 편의기능 덕분에 대형 SUV를 운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주행감을 선사한다.
가속페달을 밟는 족족 2425㎏에 달하는 차체는 원하는 만큼 속도를 낸다. 일체의 머뭇거림도 없다. 뛰어난 가속력에 무서움이 느껴질 정도다. 고속도로에 올라 차량이 없는 구간에서 가속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자 시속 180㎞까지 순식간에 속도계가 치솟는다. 과속할 의도가 없어도 가속력 탓에 자꾸만 제한속도를 넘겨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기술은 개선된 주행보조 기능이다. 스티어링 휠에 손을 살짝 얹어놓기만 해도 주행보조 기능이 유지되며 매끄럽게 앞 차와의 간격을 스스로 조절했다. 방향 지시등을 켜면 알아서 차선도 바꿔준다. 기존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기능을 갖춘 차량을 운전할 때에는 10초 간격으로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야 주행보조 기능이 유지됐지만 EV9은 변수가 없는 한 수십 분 이상까지도 주행보조가 가능했다.
부드러운 주행감에 주행보조 기능까지 작동하자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시트가 허리 부분을 쿡 찔렀다. 주행시간 30분이 지나자 운전석 에르고 모션 시트가 자동으로 작동하며 허리 보호 기능을 제공한 것이다. 일정한 패턴으로 허리 부분을 지압해주는데 강도가 제법 쎄 ‘억’ 소리가 날 정도다. 부드러운 시트로 착좌감이 훌륭한데다 안마 기능까지 갖춰 장시간 운전을 해도 피로감이 덜하다.
EV9은 99.8kWh 배터리를 장착해 1회 충전 시 최대 501㎞까지 주행할 수 있다. 공조장치를 작동시키며 전비를 신경 쓰지 않고 200㎞ 이상을 달려본 결과 공인된 수준 만큼의 전비를 기록했다.
기아는 EV9 기본모델의 트림을 에어와 어스 두 가지로 운영하고 각 트림에서 2WD(전륜구동)와 4WD(사륜구동)의 구동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판매가격은 세제혜택 적용 후 개별소비세 3.5% 기준 △에어 2WD 7337만 원 △에어 4WD 7685만 원 △어스 2WD 7816만 원 △어스 4WD 8163만 원이다. 서울시에서 에어 트림 2WD(19인치 휠)를 구매하면 국비 보조금 330만 원과 지방비 보조금을 더해 692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