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와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국가·투자자 간 소송(ISDS)이 일단락됐지만 한국 정부가 글로벌 투자자와 싸워야 하는 소송은 아직도 줄줄이 남아 있다. 이미 진행 중인 사건만 5건으로 총 7000억 원대에 달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에 중재의향서가 전해진 사건 7건 중 일부가 향후 정식 중재 제기를 할 가능성이 있어 ‘총성 없는 전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된 ISDS는 총 10건으로 이중 절반인 5건(7097억 3656만 원)은 판정이 나오지 않아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남은 사건 중 가장 오래됐으며 규모가 가장 큰 사건은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을 문제 삼은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탈이 2018년 9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2억 달러(2576억 원) 상당의 ISDS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의 2.18%를 보유하고 있던 메이슨은 두 회사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다만 엘리엇이 요구한 7억 7000만 달러(9917억 원)에 대해 최근 재판부가 7%만 인용하며 메이슨 사건 역시 비슷한 수준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해 10월에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승강기업체 쉰들러홀딩아게(Schindler Holding AG)가 1억 9000만 달러(2447억 2000만 원) 소송을 냈다. 쉰들러는 피투자사인 현대엘리베이터가 경영상 목적이 아닌 사주 일가의 경영권 강화를 위해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을 했지만 한국 정부가 감독 의무를 게을리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1년 10월에는 이란계 다국적 기업 엔텍합그룹을 소유한 다야니 가문이 우리 정부에 배상금을 빨리 지급하라는 취지로 재차 ISDS를 제기했다. 다야니 가문은 2015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에 실패한 뒤 계약금을 채권단에 몰취당하자 935억 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고 730억 원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대(對)이란 제재와 금융거래 제한으로 인해 배상이 지연되고 있다.
그 밖에 해외 개인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ISDS도 있다. 한 중국인 투자자와 미국 국적 투자자는 각각 1억 5000만 달러(1932억 원)와 537만 달러(69억 1656만 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론스타와 엘리엇 사건에서 인용된 배상금은 5~7% 수준으로 만일 이 같은 결과가 위 다섯 건에도 적용된다면 총 350억~490억 원의 혈세를 배상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2013년 이후 ISDS에 대응하기 위해 소요한 법률 비용 등이 지난해 말 기준 685억 원이라는 점과 추가 이자 등을 고려했을 때 정부 재정지출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현재 우리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내고 중재 제기를 하지 않은 사건은 8건으로 이중 합의된 1건을 제외한 나머지 7건은 향후 정식 중재 제기가 이뤄질 수 있다.
한편 엘리엇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결과는 사실에 비춰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이 중재 판정에 승복하고 배상명령을 이행하길 바란다”고 말해 사실상 항소의 뜻이 없음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배상액을 좀 더 줄이기 위해 항소에 들어갈지 여부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법무부는 “판정문 분석 결과 및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추후 상세한 설명 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