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가 된 공주는 호수를 거닐다 우연히 사업가를 만난다. 사업가는 자신의 개발 계획이 방해받을까 두려워하며 그를 백조로 변신시킨다.
어딘가 낯설면서 친숙한 이야기는 프랑스 현대 무용의 거장 앙쥴랭 프렐조카주가 새롭게 구성한 발레 ‘백조의 호수’다. 작곡가 차이코프스키가 만든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는 1893년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레프 이바노프가 창작한 안무로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후 마녀의 저주에 걸려 백조가 된 ‘오데트’가 왕자 ‘지그프리트’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골조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해왔다. 여기에 프렐조카주는 환경 문제와 무분별한 개발을 접목해 ‘백조의 호수’를 재해석했다.
프렐조카주는 1984년 데뷔한 이래 무용계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브누아 드 랑스’와 ‘베시 어워드’에서 안무상을 수상하는 등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안무가다. 그는 프티파 탄생 200주년 기념 ‘고스트’를 위촉받은 후 받은 영감을 통해 ‘백조의 호수’를 재구성해 2020년 프랑스에서 초연했다. 프렐조카주는 자신에게 ‘백조의 호수’는 “에베레스트산과 같이, 가장 위대한 창조물 중 하나”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백조의 호수’ 속 여러 인물들은 현대 사회에 맞춰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백조로 변하게 된 비운의 공주 오데트는 환경운동가로, 오데트를 사랑하는 왕자 지그프리트는 시추기 판매기업의 상속자로, 악마 로트바르트는 부동산 사업가다. 무대 세트 없이 영상과 조명만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공연 곳곳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난개발이 조명된다. 금융 사회를 상징하는 숫자가 끝도 없이 오르고, 파티장에 참석한 무대 위 군중은 이를 즐거워한다.
백조들은 새하얀 순수의 표상처럼 우아하게 군집한다. 종이접기에서 영감받아 러시아 패션 디자이너 이고르 샤프린이 디자인한 흰색 레이어드 튀튀(발레리나가 입는 스커트)는 고전과 현대의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는다. 백조들은 팔을 길게 뻗어 백조의 목 형상을 그려 자연 속 백조의 모습을 본딴 듯 환상적인 모습으로 무대를 장식한다. 25명의 무용수들이 의자에 앉아 춤을 추는 군무도 장관을 이룬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 ‘백조의 호수’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서곡·교향곡 등에서 발췌한 음악도 새롭게 110분의 무대를 채운다. 유명한 ‘백조의 호수’의 선율에 맞춰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은 명화처럼 무대를 가득 채우며 오데트와 지그프리트의 격렬한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선율은 이내 탐욕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한 연인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공연은 LG아트센터에서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