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TSMC 투자 유치서 기업 국유화까지…'보조금' 포탄쏘는 EU·日

■ 글로벌 반도체 전쟁 격화
인텔 獨투자 300억 유로로 확대
日, 2년간 2조엔 투자 이끌어내
일각선 "제품 값 증가" 우려도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으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대만·한국에 밀린 유럽과 일본이 강력한 보조금 정책을 내놓으면서 반도체 산업 육성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유럽은 4월 유럽판 반도체지원법을 통과시킨 후 신속한 보조금 지원을 앞세워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반도체 명가 재건’을 준비해온 일본은 보조금을 넘어 아예 자국 반도체 소재 기업을 국책기업으로 전환할 태세다.


유럽은 지난주 인텔의 대규모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인텔은 17일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반도체 생산 및 테스트 시설 건립 계획을 공개한 데 이어 19일에는 독일 마그데부르크 반도체공장 확장 투자액을 170억 유로에서 300억 유로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향후 10년간 유럽 반도체 부문에 800억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공개했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이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에 대한 보조금을 68억 유로에서 100억 유로로 대폭 늘린 독일 정부의 의지가 투자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가했다.





유럽연합(EU)의 반도체 투자 유치에 대한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 리스크가 불거진 데 더해 미국이 지난해 8월 53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지원법을 발효하자 EU도 이에질세라 올해 4월 유럽판 반도체지원법을 통과시켰다. 430억 유로를 투입해 현재 9% 수준인 세계 반도체 생산 시장점유율을 2030년까지 2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 EU의 목표다. 유럽이 반도체 설계와 장비 분야에서는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네덜란드 ASML 같은 강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


유럽의 정책은 공급망 다각화를 꾀하는 기업들의 수요와 맞물려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까지 독일(인피니언), 프랑스(글로벌파운드리·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합작), 이탈리아(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에서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신규 투자가 결정됐다. 각국 정부는 사업비의 20~40%가량을 지원할 방침이다. TSMC 역시 독일 드레스덴에 100억 유로 규모의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독일 정부와 사업비의 50%를 보조금으로 받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도 이달 8일 유럽 19개국에서 진행되는 56개 기업의 220억 유로 규모 반도체 및 통신기술 투자에 대해 81억 유로의 보조금을 승인했다. 이날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은 “유럽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능력 강화에 국가의 명운을 건 것은 ‘옛 반도체 명가’ 일본도 마찬가지다. 2021년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한 일본은 막대한 보조금과 비교적 안정된 지정학적 상황을 내세워 2년간 2조 엔이 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소니·도요타 등 자국 8개 기업의 공동 출자로 반도체 제조기업 ‘라피더스’도 세웠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가 반도체 핵심 소재 기업을 사실상 재국유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국부펀드 산업혁신투자기구(JIC)는 자국 반도체 소재기업 JSR 주식 100%를 공개매수해 내년 상장폐지할 계획이다. JSR은 반도체 소재 ‘포토레지스트’ 분야의 세계 점유율이 약 30%에 달하는 기업으로 1969년에 민영화됐다. 계획대로 상장폐지까지 될 경우 정부의 반도체 육성 기조에 맞춰 사업을 운용하는 것이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반도체 경쟁이 공급망 안정화에 의미 있는 도움을 주기보다는 제품가격 증가, 예산 낭비 같은 악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기업들의 신규 투자에 따른 부담은) 장기적으로 제조 제품들을 비싸게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그 비용이 전가될 것”이라며 “반도체 생태계는 너무 광범위해서 완전한 자급자족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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