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임종룡 "증권사 인수 서두르지 않겠다"

■ 우리금융 회장 취임 100일 인터뷰
"우리가 필요하다니 가격 올라
시기 조금 늦추는 것도 플랜B"
카카오모빌리티 지분 인수 검토
한일·상업은행 갈등 해결 등
조직문화 조기 혁신 성과도




“서두르지 않겠다.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도 플랜B가 될 수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27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서둘러 증권사 인수를 추진하기보다는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3월 24일 취임 당시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증권·보험사 인수 의지를 불태웠지만 매물 찾기가 어려워지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다음 달 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임 회장은 “우리금융이 증권사가 필요하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가격이 비싸지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인수 시기를 조금 늦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증권사 다음으로 보험사를 사겠다는 순서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는 우리금융의 숙원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금융은 올해 1분기 기준 하나금융에 3위를 내준 것은 물론 NH농협금융에까지 밀리는 뼈아픈 성적표를 받아 든 상황이어서 더더욱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임 회장은 “하반기에는 조금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며 “(실적 관련해서는) 비용 절감을 중요하게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과거 금융위원장 시절 핀테크 및 디지털 금융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만큼 최근 금융권에서 비금융 데이터를 경쟁적으로 확보하는 분위기에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와의 협업 및 지분 인수를 두고 시중은행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임 회장은 “기능적인 차원에서 개편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려고 한다”며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최근 대형 로펌을 자문사로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은 과거 금융위원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 국무총리실장 등 요직을 거치며 금융 정책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보였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맡을 당시에는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민관을 아우르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만큼 취임 초부터 그가 우리금융에서 이룰 성과에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임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증권사 인수 계획을 선언하고 기업 금융의 명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 같은 뜻을 발표한 지 이제 100일. 아직 성과를 평가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불과 3개월 사이 임 회장이 꽤 성공적인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가장 돋보인 부분은 바로 ‘조직 문화 혁신’이다. 지난해 우리금융에서는 사모펀드 사태와 600억 원대 직원 횡령 사건이 터졌고 올해에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까지 발생하며 부정적 시선이 가득했다. 과감한 이미지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던 임 회장은 직속으로 회장 및 자회사 최고경영자(CEO)협의체인 기업문화혁신 태스크포스(TF)를 신설했다. 무엇보다 ‘은행장 선정 프로그램’을 전격 시행하며 오랫동안 계속돼 온 한일·상업은행 간 갈등 해결에 나섰다. 이를 통해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 대표가 차기 우리은행장에 낙점됐고 선정 과정에서는 이전과 달리 파벌 다툼이나 흑색 선전이 확연히 줄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금융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회장이 어디 은행 출신인지가 업무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번에는 (외부 출신이라 그런지) 그런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내부적으로 좋은 평가가 오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밖에 임 회장은 그동안 깜깜이였던 인사평가 내용도 올해 하반기 단계적으로 당사자에게 공개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조직 문화를 혁신한다는 방침이다.


금융 당국이 추진하는 ‘상생 금융’에도 앞장섰다. 전세 사기 피해가 사회문제로 거론되자 주요 금융지주 중 가장 먼저 피해자들을 위한 금융·비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으며 산불 피해 지역 지원 등에도 선제적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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