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라면업계 1위 농심(004370)이 13년 만에 '신라면' 가격 인하를 결정하면서 다른 라면은 물론 빵과 과자 값 동향에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가격 인상 명분으로 작용했던 국제 밀 등 원재료 가격이 최근 들어 급락하면서 가격을 다시 내려야 한다는 정부와 소비자들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건비와 물류비 등의 부담이 동시에 늘어난 상황이어서 가격 인하로 인한 해당 기업들의 이익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심과 삼양식품(003230)에 이어 오뚜기(007310)·팔도 등 국내 라면 업체들은 다음 달부터 '진라면'과 '팔도비빔면' 등 주요 제품의 출고가 인하를 검토 중이다. 농심은 이날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다음 달부터 각각 4.5%, 6.9%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라면 1봉지 가격은 소매점 기준 1000원에서 950원으로, 새우깡은 1500원에서 1400원으로 낮아진다. 삼양식품도 다음 달부터 ‘삼양라면’과 ‘짜짜로니’, ‘열무비빔면’ 등의 출고가를 4~15% 인하한다고 이날 밝혔다. ‘삼양라면’ 가격은 940원에서 900원으로 40원 내린다. 다만 ‘불닭볶음면’은 이번 인하 대상에서 제외됐다.
주요 라면 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하는 건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당시 정부가 밀 가격 하락을 내세워 압박을 펼치자 농심은 라면 가격을 최대 7% 내렸다. 이번 가격 조정 역시 정부의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라면 값 문제와 관련해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가격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올해 2월 밀 선물가격은 t당 276달러로 지난해 5월 419달러보다 34% 떨어졌다. 이에 CJ제일제당(097950)을 비롯한 국내 제분회사들이 다음 달부터 라면 업체에 대한 밀가루 공급가를 약 5%가량 낮추기로 한 것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제분업체들 역시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가격 인하 압박을 받았다.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등은 주 원재료인 밀가루와 팜유 국제 시세가 뛰자 2021년 8~9월, 지난해 9~10월 두 차례에 걸쳐 라면 값을 인상했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12년간 동결됐던 진라면 한 봉지 가격은 2021년 720원에서 이달 950원으로 32%나 비싸진 상황이다. 가격 인상 효과가 더해지자 농심의 올 1분기 국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1.3% 증가했고, 오뚜기도 영업이익이 10% 이상 늘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향후 실적 전망치는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심은 이번 가격 인하로 밀가루 공급가 인하에 따른 비용절감액을 제외하고 120억 원의 손해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대표 서민 음식인 라면 값이 내리자 밀가루를 주 원료로 사용하는 제과·제빵 업체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소맥 가격이 안정화 된 상황에서 SPC삼립을 포함한 밀을 원재료로 하는 식품업계가 가격을 제자리로 돌려 놓아야 한다"며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SPC삼립은 올해 2월 50여 종의 제품 가격을 평균 12.9% 인상한 바 있다. 롯데웰푸드도 올해 1월 원부자재 상승에 따라 일부 제과류와 빙과류 가격을 올렸다. SPC 관계자는 “빵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라면발 가격 인하가 식품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 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라면 값 하나만 잡자고 칼을 무리하게 빼든 건 아닐 것"이라며 “빵, 과자는 물론 음료, 치킨, 식자재 등 먹거리 전반으로 가격 인하 압박이 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