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럽 출장 후 시늉만 하는 재정준칙 도입, 언제까지 미적댈 건가

나랏빚을 일정 비율 이하로 관리하는 재정 준칙 도입이 거대 야당의 발목 잡기 등으로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다. 여야는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재정 준칙 도입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입씨름만 벌이다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냈다. 여야 의원들은 재정 준칙 법안을 30개월이나 국회에서 공전시키더니 4월 느닷없이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하겠다며 유럽 3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왔다. 이를 두고 “외유성 출장”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국회는 그 뒤 두 달 동안 제대로 논의하지 않다가 따가운 비판의 소리를 듣고서야 이날 마지못해 66개 안건 중 1번 안건으로 올렸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 부채 급증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야가 이견만 확인하면서 30일 국회 본회의 상정도 무산됐다. 이는 재정 만능주의에 중독된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더 크다. 민주당은 재정 준칙 자체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서도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더 시급하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민생 대책’이라는 미명 하에 기초연금 인상, 코로나19 부채 이자 탕감, 대학생 학자금 무이자 대출 등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선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니 “애초 재정 준칙 도입 의사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예산이 소요되는 지역구 숙원 사업 해결 등을 위해 법안 통과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여야는 재정 준칙 등 수십 개의 안건을 논의하는 소위를 3월부터 매달 두 차례만 열었다. 다른 쟁점 법안도 산적한 마당에 여야 간 이견이 큰 재정 준칙 법안이 제대로 논의될 리 없다. 재정 준칙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과 방만 재정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다. 재정 건전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유사시 위기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튀르키예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재정 준칙을 시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정 악화와 국가 부채 급증은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을 떠넘기는 행위다. 여야가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재정 준칙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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