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에 관한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국제행사가 열렸다. 영국과 독일의 개인정보 감독기구 수장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학계·기업·정부, 국제기구 참가자가 모인 비중 있는 행사였다. AI 데이터를 둘러싼 국제 규범에 최근 들어 관심이 크게 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주요 국가의 정책 당국자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공개적으로 논의를 진행한 것은 아마도 처음 있는 일이어서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한 차례의 행사만으로 구체적 결정이 이뤄질 수는 없었고 그보다 개략적인 방향성을 모색하고 추후 논의를 위한 시발점을 제공한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AI 데이터 영역에 관한 중요한 행사를 우리나라가 주도해 개최하면서 향후 이 영역의 논의에 있어 우리나라를 주요 국가로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 또한 중요한 결실이었다.
국제경제에 관한 규범 체계라는 커다란 틀에서 보면 20세기 후반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과 ‘세계무역기구(WTO)’가 글로벌 무역의 지배적 규범을 제공한 시기였다. 한국은 GATT와 WTO의 국제무역 규범을 배경으로 무역 규모를 크게 키우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20세기가 상품 무역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데이터와 디지털 통상이 주목받는 시기다.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둘러싸고 관련 규범이 일부 있지만 아직 통일된 국제 규범이 마련된 상황은 아니다. 유럽연합(EU)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기반한 ‘적정성’ 평가 방식이 있고 미국은 이와 다른 방식의 인증제도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이 영역의 규범은 이미 지나칠 정도로 복잡해졌다. 일관성 있는 국제 규범의 마련이 매우 중요해진 상황이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데이터를 둘러싼 국제 규범 논의는 이제 더욱 본격화할 조짐이다. 지금까지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둘러싼 규범 논의가 주로 전문가 사이에서 이뤄졌다면 이제는 AI 시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와 맞물려 21세기 글로벌 통상 규범의 핵심으로서 데이터 국제규범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상당히 폭넓게 진행될 것이다.
데이터 영역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정보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늘면서 근래에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개인정보보호법제를 마련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논의를 주도해온 미국과 유럽을 벗어나면 구체적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핵심적 선도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데이터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어떤 정책적 입장을 취하는지는 주요 국가들의 지속적 관심사다. 국제 무대에서 그에 상응하는 역할이 기대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21세기 글로벌 데이터 규범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물론 그 기회를 얼마나 유용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는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