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서열 1위 판궁성(사진) 공산당위원회 서기와 전격 회동했다. 이번 만남은 차기 인민은행장으로 유력한 판 신임 당 서기 측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특히 이번 회동은 미국의 동맹국을 활용한 대중(對中) 견제가 여전한 가운데 그 여파로 중국 경제 회복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중국의 요구로 깜짝 단행돼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4일 인민은행에 따르면 이 총재는 전날 중국 베이징에서 판 당 서기와 단독으로 만났다. 이 총재와 판 당 서기는 상견례 형식으로 자리를 마련해 양국 경제 현안과 중앙은행 간 협력 방안도 논의했다. 인민은행 측은 “양측은 거시경제 상황과 한중 금융 협력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인민은행에서 대표적인 ‘국제통’으로 꼽히는 판 당 서기는 이달 1일 깜짝 인사로 전면 등장했다. 3월 유임됐던 이강 인민은행장이 불과 4개월 만에 물러나게 되면서 최근 경제 부진의 책임을 묻는 인사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환율 안정과 경기 회복 임무를 맡은 판 당 서기가 첫 대외 행보로 이 총재를 만난 것은 중국의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한중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도 3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일 3국 협력 국제포럼에 참석해 “비바람이 지나간 뒤 햇빛이 찾아온다”며 동북아 3개국 간 협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로 고전 중인 중국이 인접국이자 기술 강국인 한국과 일본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날 중국은 8월부터 반도체용 희귀 금속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통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패권 전쟁 속에서 중국도 조금씩 달라지는 상황”이라며 “왕 위원의 발언을 정치적 구호라고 보더라도 나쁠 것이 없는 만큼 우리도 실리를 챙기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