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방문을 일방적으로 취소시키며 EU의 대(對)중국 디리스킹(위험 경감) 시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EU가 전략적 원자재로 분류하고 있는 갈륨·게르마늄 관련 물질의 수출을 통제한 데 이어 1주일도 남지 않은 외교 수장의 방중 일정까지 무산시키자 EU는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유럽 견제에 나선 중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대한 이란의 가입을 승인하며 세력 확장에도 나섰다. SCO 정상회의는 테러나 극단주의와의 전쟁을 구실로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미국과 서방 국가를 겨냥했다.
4일(현지 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나빌라 마스랄리 EU 대변인은 중국 측으로부터 다음 주로 예정된 날짜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렐 고위대표는 4월 방중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감염으로 일정이 연기됐다. 10일 베이징을 찾기로 일정을 조율했으나 이번에는 중국 측으로부터 사실상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를 두고 중국이 지난주 EU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향해 디리스킹을 거론한 데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EU는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중요한 무역·경제 파트너로 규정하면서도 “공급망을 포함해 핵심적인 의존성과 취약성을 계속 줄여나가며 필요하고 적절한 경우 위험 요인을 제거하고 다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은 EU 일부 회원국과 중국의 관계 등을 고려해 성명의 수위가 조절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중국은 고위급 회동을 무산시키며 자국을 향한 EU의 디리스킹 시도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특히 전날 중국 상무부가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예고한 것까지 더해져 EU는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수출 통제와 고위급 대화 무산 카드로 EU를 압박한 중국은 이란을 SCO에 정식 가입시키며 세 불리기를 통해 힘을 과시하고 있다.
이날 인도 뉴델리에서 화상으로 열린 SCO 정상회의에서 이란은 정식 회원국 가입 승인을 받았다. 이란은 핵 개발과 관련해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데 러시아와 함께 SCO를 이끄는 중국은 이란과 협력해 서방 국가들과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인도·파키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을 포함해 9개국으로 늘어난 SCO는 세계 인구의 44%에 달하는 인구 31억 명의 거대 지역협의체다.
SCO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집단화와 이념, 대립적 사고를 통한 국제 및 지역 문제 해결에 반대하며 전쟁 등을 구실로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SCO는 다른 국가나 국제기구를 겨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미국 주도의 서방 국가를 견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편 중국은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까지 연결하는 국제 복합 화물열차 서비스도 이날 시작했다. 중국 웨강아오(광둥성·홍콩·마카오) 지역과 징진지(베이징·톈진·허베이) 지역에서 신장위구르 지역까지 철도로 이동한 후 도로를 통해 최종 역인 우즈베키스탄까지 화물을 운송한다. 글로벌타임스는 이에 따라 중국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물류 교류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