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최근 각 부처에 배포한 ‘보조금법상 수행 배제 및 명단 공표 가이드라인’의 핵심 내용은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자에 대한 제재 절차다. 구체적으로 부정 수급 확인 시 정부는 보조금 교부 결정을 취소하고 환수 조치에 돌입한다. 보조금을 받은 보조사업자나 보조금 수령자는 보조금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더한 금액을 정부에 반환해야 한다. 이후 정부는 부정 수급자에게 총반환 금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제재 부가금을 물릴 수 있다. 보조금 및 제재 부가금 체납 시 체납 기간에 따라 가산금도 부과된다.
가이드라인에는 보조금 부정 수급자의 명단 공표 방식 등도 명시됐다. 정부는 우선 사업 수행 배제 대상이 된 보조사업자나 보조금 지급 제한 대상에 오른 보조금 수령자 등 부정 수급자를 매년 3월 말까지 해당 중앙관서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공표 기간은 1년이다. 단 부정 수급자의 법 위반 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는 공표 기간을 최대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후 정부는 미납된 반환금, 제재 부가금 등에 대한 강제 징수 절차에 돌입한다.
기재부가 현행법 등에 규정된 내용을 가이드라인으로 요약·정리한 배경에는 보조금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있다. 정부가 최근 민간단체와 태양광 보조금에 대한 고강도 감사와 점검을 잇따라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태양광 산업 등에 투입된 전력산업기반기금 중 5824억 원이 위법하거나 부적정하게 집행됐다. 정부가 지난해 진행한 1차 점검 결과 적발된 전력기금 부당 집행액(2616억 원)을 합하면 관련 비리는 총 8440억 원 규모다.
민간단체 보조금 비리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를 실시한 결과 1조 1000억 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에 달하는 부정·비리를 적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통령실이 적발한 부정 사용액은 314억 원 규모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 같은 감사 결과에 “(보조금 비리는) 납세자에 대한 사기 행위이고 미래 세대에 대한 착취 행위”라며 보조금 예산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중앙정부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민간단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30조 원 규모다.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한 보조금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올해 예상되는 ‘세수 펑크’도 기재부가 보조금 구조 조정에 속도를 내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 들어 5월까지 걷힌 국세는 160조 2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6조 4000억 원 줄었다. 올해 세수 결손 규모는 40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올해 나라 살림이 지난해보다 빠듯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정부가 세수 결손 우려에도 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법정 최저 한도인 60%로 유지하고 가업승계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등 여러 감세 방안을 내놓았다. 국세수입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추가 재정을 조달할 방안까지 마땅치 않은 만큼 기재부는 보조금 비리 등 재정 누수 요인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야 할 수밖에 없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5일 국회에서 “국고보조금 사업을 전부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거나 위법하게 집행된 부분은 환수 등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추가경정예산 압박도 ‘보조금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조금 비리 제재를 강화하고 관련 예산을 삭감하면 지출 구조 조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며 “현 상황에서는 추경보다 재정지출을 최대한 억제해야 통화정책과의 엇박자를 줄이고 조기에 물가 상승률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