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낸 문제 틀리면 20분간 무릎 꿇어야”…직장 내 괴롭힘 ‘백태’

직장갑질119, 직장인 1000명 설문
33% “1년 내 괴롭힘”…9% “극단선택 고민”
피해자 66%는 “참거나 모른 척”…갑질 악순환

지난달 직장인들이 서울 한 빌딩 지하식당을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근로계약서에 있던 ‘상벌점 제도’가 자신에게 직장 내 괴롭힘이 될 것이라고 예상 못 했다. 이 제도는 처음 배우는 업무라도 실수하거나, 사장이 묻는 일과 질문에 대해 짧게 답하거나, 사장이 낸 문제를 틀리면 벌점이 주어진다. 직원은 벌점 1점당 20분씩 무릎을 꿇는다. A씨는 “재택근무일 때는 무릎 꿇는 장면을 ‘라이브 인증’해야 한다”며 “(사측이) 저에게 ‘벌점을 더 줄까’하는 압박까지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접수한 민원 중 하나다. A씨처럼 사회적 통념을 벗어난 악랄한 갑질을 일삼는 사업장이 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상황이 개선되기 어렵다며 감내하거나 묵인하고 있다.


9일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9~15일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1년 동안 괴롭힘을 경험한 비율은 33.3%다. 괴롭힘 경험 비율은 상하문화가 뚜렷한 우리나라 기업 특성을 보여준다. 비율은 일반사원이 34.7%로 상위 관리자(20.6%)를 훨씬 웃돈다. 괴롭힘 유형은 ‘모욕 및 명예훼손’이 22.2%로 1위다. 이어 부당지시(20.8%), 폭행 및 폭언(17.2%), 업무 외 강요(16.1%), 따돌림 및 차별(15.4%) 순이다. 괴롭힘 경험자 333명을 대상으로 괴롭힘 수준을 묻자 48%는 ‘심각하다’고 답했다. 심지어 9.3%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직장갑질119에는 심한 인격 모독이 우려되는 갑질 민원들이 적지 않다. 주요 민원을 보면 직장인 B씨는 “사장이 입천장 소리를 내면서 나를 개 부르듯이 부른다”고 전했다. 직장인 C씨는 사장으로부터 “네가 학벌이 제일 낮으니 나대지 말라”는 질타를 들었다. 직장인 D씨는 술취한 상사가 자신의 집에서 막무가내로 자고 간다며 답답해 한다. 이 심각함은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변화로도 확인된다.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고용부가 특별감독을 실시한 사건은 17건이다. 사유를 보면 폭행, 괴롭힘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13건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노사관계는 2건에 그쳤다.


우려는 갑질을 당한 직장인들이 자포자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65.5%는 ‘참거나 모른 척 했다’고, 27.9%는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괴롭힘을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69.5%는 ‘대응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22.2%는 신고에 따른 불이익을 걱정했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효성을 얻으려면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며 “당국의 관리 감독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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