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업계가 요즘 상상을 초월하는 원가 부담에 신음하고 있다. 시멘트 생산의 필수 원료이며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유연탄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평시 대비 약 7~8배나 올랐다. 대기오염 물질 저감을 위해 사용하는 요소수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역시 불안한 국제 정세와 맞물려 급등했다. 비록 지난해 판매 가격 인상으로 매출은 늘었으나 원가 부담이 커져 영업이익 및 순이익률은 오히려 급감했으며 이미 일부 업체는 시멘트 사업 부문의 적자로 힘들어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앞으로 3~4년간 시멘트 업계는 탄소 중립 등 순환 경제 시대 전환에 따른 중요한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발전·석유화학·철강과 함께 온실가스 다배출업종에 속하는 시멘트 산업은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시설 개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또 강화되는 대기오염 물질 배출 규제를 충족하기 위한 환경 투자 설비 교체도 시급하다. 지난 5년간 시멘트 업계는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 부문 시설 개조와 환경 규제 강화에 대비해 설비투자 등 약 2조 315억 원을 투입했다.
경영 악화를 이겨내지 못한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환경 규제 강화에 필요한 막대한 시설 투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호남의 고려시멘트는 고민 끝에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주요 7개사도 투자 규모를 늘려야 하는데 금융권 차입 등 외부 의존도가 높아져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전 세계 시멘트 업계는 주요 온실가스 감축 수단 중 하나로 폐플라스틱·폐타이어 등 재활용이 가능한 순환 자원을 사용해 화석연료인 유연탄을 대체하고 있다. 이미 독일에서는 대체율 100%를 달성한 시멘트 공장도 등장했다. 유럽 전체로 순환 자원의 유연탄 대체율은 52%에 달하며 2035년까지 65%로 확대된다. 35% 수준에 불과한 국내 시멘트 업계는 갈 길이 멀다.
국내 업계의 환경 투자는 순환 자원을 재활용해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시설을 확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20여 년 전부터 ‘쓰레기 시멘트’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통해 순환 자원의 재활용을 폄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시멘트 산업의 순환 자원 재활용을 악의적인 프레임에 끼워 맞추고 여론을 선정적으로 호도하는 것이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최근 순환 경제 시대에 탄소 중립 대응에 나선 독일·아일랜드·영국 등 유럽 시멘트 산업 현장을 찾아 국내 시멘트 업계의 생존 전략을 모색했다. 이곳에서 만난 토마스 기요 글로벌시멘트콘크리트협회(GCCA) 회장과 피터 호디노트 전 유럽시멘트협회 회장은 유럽과 똑같은 생산 설비와 강화된 환경 규제하에서 제한된 품목의 순환 자원만 사용하는 한국 시멘트 업계가 매도당하는 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들은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순환 자원) 사용을 쓰레기 시멘트라고 부르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며 국내 일부 시민 단체의 주장을 일축했다. 호디노트 전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쌍용C&E의 동해 공장을 방문해 유럽보다 훨씬 큰 초대형 설비를 가동하면서 순환 자원 재활용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럽은 이미 30여 년 전 유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순환 경제 시대에 발맞춘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배출 오염 물질 저감에 필요한 SCR 설비 등 시설 투자에 유럽연합(EU)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멘트 업계는 유럽과 달리 과도한 유해성 논란에 시달리며 환경 부문의 시설 투자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 조달을 홀로 감수하고 있어 재무구조는 갈수록 악화되고 경영 여건 개선도 어려워지고 있다.
시멘트 업계의 생존 전략은 시대착오적인 쓰레기 시멘트 논란을 종식시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는 동시에 국내 시멘트 업계가 순환 경제 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 지원에 나서야 한다. 국제시장가격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시멘트·콘크리트 시장가격의 현실화도 중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시멘트 업계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순환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정맥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