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첨단소재 제조사를 자회사로 둔 A 기업이 올해 초 산업은행을 찾았다. 전 세계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유럽 진출에 필요한 자금을 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창구에서 돌아온 답은 “추가 대출은 어렵다”였다고 한다. 배터리 업계의 한 인사는 “배터리 시장은 설비투자 싸움이라 누가 돈을 더 끌어오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면서 “경쟁국은 노골적으로 돈을 퍼주는데 우리는 돈줄을 죄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했다.
# 연초 HMM 매각을 놓고 1대 주주인 산은과 2대 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기 싸움을 벌였다. 해진공은 최적의 시기를 찾자며 조기 매각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으나 산은이 속도전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매각을 서두르려 HMM의 현금성 자산에까지 손을 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면서 “선사들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쓸 선박 건조 자금인데 시야가 너무 좁다”고 했다.
# 강석훈 산은 회장이 지난달 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외부 변수에 취약한 재무 구조를 갖고 있다”며 무겁게 입을 뗐다. 그는 자회사인 한국전력과 HMM의 실적에 따라 산은 건전성이 크게 휘청인다면서 자구 노력을 하겠지만 당국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산은을 바라보는 산업계의 눈총이 따갑지만 산은도 할 말은 있다. 돈줄을 죄고 부실기업을 털지 않으면 재무 건전성이 악화할 게 뻔하다. 레드 라인 격인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13%에 다가설수록 조달 비용은 불고 자금 지원 역량은 뒷걸음질한다. 물론 산은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걸 바라지 않으니 당국에 손을 벌렸을 테다.
한데 당국은 “공식적으로 요청을 받은 적 없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 산은에 1조 원가량 출자했는데 돈을 더 붓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다만 핵심 산업의 자금줄이 끊기고 홀로서기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업이 떠밀리듯 시장에 나왔을 때의 여파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산은을 방패막이로 세워둔 채 몸 사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