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가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반도체·2차전지 등 유망 산업으로 재편한다는 방침 아래 비핵심 자회사 매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과거 그룹에서 계열사의 신사업 투자를 담당했던 박원철 대표가 SKC의 새 항로 개척을 지휘하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SKC의 사업 재편 과정에는 거액의 실탄을 보유한 국내 사모펀드(PEF)들이 파트너로 나서면서 자본시장도 주목하고 있다.
10일 SKC는 자회사 SK엔펄스가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앤컴퍼니와 (매각을 위한) 이행 강제성 없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파인세라믹스 사업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파인세라믹스 사업부는 반도체 전(前) 공정인 식각 작업용 소모성 부품을 제조하는 곳이다. 현재 SK엔펄스 전체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매각가로 약 4000억 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C는 지난 7일엔 반도체 테스트 장비 업체 ISC의 경영권을 총 5225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하며 반도체 후(後)공정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사모펀드 운용사 헬리오스프라이빗에쿼티가 보유한 지분 35.8%를 3475억 원에 인수하고 ISC가 발행하는 신주에 1750억 원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ISC는 패키징을 거친 반도체 칩세트의 전기적 특성 검사에 사용되는 핵심 소모품을 생산한다.
이처럼 SKC의 반도체 소재 사업은 현재보다 미래 먹거리가 크게 펼쳐질 곳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특히 국내 반도체 산업이 파운드리와 함께 후공정 분야로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SKC가 ISC를 과감히 인수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회사가 바라보는 또다른 유망 산업은 2차전지 소재 분야다. SKC의 자회사 SK넥실리스는 지난달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1800억 원을 조달했다. KB증권과 신영증권이 참여해 신규 발행된 전환상환우선주(RCPS) 전량을 취득해갔다. SKC는 이렇게 확보된 재원을 유럽 헝가리 동박 공장 증설에 투입해 경쟁사와 격차를 벌린다는 계획이다.
SKC의 신사업 추진과 비핵심자산 매각은 지난해 3월 박 대표 취임 이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분할 뒤 한앤컴퍼니에 1조6000억 원을 받고 매각된 필름사업부(현 SK마이크로웍스)가 신호탄이었다. 최근에는 국내 또다른 사모펀드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에 자회사 SK피유코어 경영권까지 매각하기로 하고 4500억 원 수준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박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쳐 OCI, SK주식회사, GS에너지,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등에 몸담았다. SK그룹 내에서도 투자 업계와 에너지 소재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인물로 꼽힌다. 그는 SK그룹에 복귀한 뒤 동남아 투자법인 대표를 지냈고 2021년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신규사업팀을 이끌며 계열사의 다양한 신사업 추진에 몰두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SKC의 사업 재편 움직임은 박 대표의 최근 이력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투자 업계의 설명이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 대표가 그룹 내 신사업 투자를 담당했을 당시 SKC를 미래 소재 사업의 핵심 계열사로 점찍었다"면서 "지난해 CEO로 취임한 뒤 그동안의 구상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SKC의 비핵심 자산 매각과 인수·합병(M&A) 등 신규 투자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실제 SKC는 지난 4일 투자자 대상 사업 설명회를 열고 향후 5년 간 최대 6조 원의 투자를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M&A에 1조~2조 원을 집행하고 글로벌 확장 증설 및 신사업 투자에 4조 원을 투입한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이를 위해 필름과 화학, 세정·광학소재 등 기존 사업은 자산 유동화를 추진해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지난해 매각이 완료된 SKC미래소재와 최근 협상 테이블이 차려진 자회사 두 곳 매각까지 포함하면 SKC는 단숨에 2조6000억 원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서 “신사업 추진을 위해 기존 사업은 과감히 접겠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읽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