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간) 취임 이후 두 번째 참석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나토가 사실상 신흥 안보협력체 수준으로 격상된 점을 평가하며 실질적인 공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건 지원 등을 약속하면서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북한 미사일 위협에 맞서 더욱 강력히 연대해 대응하자고 요청했다.
윤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오늘날과 같은 초연결 시대에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가 따로 구분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토는 2022년 전략 문서에서 대서양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고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를 위한 상호 파트너십의 긴요함을 강조했다”며 “대한민국의 인태 전략 역시 나토를 중요한 파트너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11년 만에 사이버 안보와 과학기술, 신흥 기술, 대테러 등 11개 분야를 아우르는 ‘한·나토 국가별적합파트너십프로그램(ITPP)’에 서명했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나토의 협력이 군사 분야 등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은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ITPP를 체결하고 비확산, 사이버, 신흥 기술 등 협력을 제도화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나토와 상호 군사 정보 공유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사이버안보 선도 국가로서 ‘국제 사이버 훈련센터’를 설치하고자 한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과 나토 간 사이버안보 협력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밝힌 새로운 단계의 협력은 인태 지역의 사이버 안보 선도국으로서 한국에 ‘국제 사이버 훈련센터’를 설치해 국제 사이버 훈련을 개최하는 방안이다. 나토는 사이버방위센터(CCDCOE)를 2008년 에스토니아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대규모 사이버 공격 대응 훈련인 ‘록드 실즈(Locked Shields)’를 실시하고 사이버안보 관련 국제 규칙을 제시한 ‘탈린 매뉴얼’을 발간하기도 했다. 한국은 윤 대통령이 국가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지난해 아시아 국가 최초로 나토 사이버방위 협력센터에 가입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2027년 대전에 400억 원을 투입해 2500평 규모의 민관군 합동 국제 사이버 훈련센터를 신축한다. 윤 대통령이 밝힌 구상은 한국에 설립된 사이버훈련센터를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국제 사이버훈련을 주도하는 방향이다.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서 밝힌 대로 한국과 나토 간의 군사 정보 공유도 확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한국은 나토의 ‘전장정보수집활용체계(BICES·바이시스)’ 네트워크를 공유하게 된다. ‘바이시스’는 나토 동맹국들이 군사기밀과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나토와 우리가 바이시스망을 공유하면 앞으로 우리가 미국과 핵 협의를 가동할 때 어떤 핵 정보를 공유할지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나토의 정보가) 참고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나토가 승인하면 우리가 바이시스 회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한국이 바이시스에 가입해도 실질적인 군사훈련이나 핵 전력 정보를 공유하기보다는 사이버안보 등 신흥 기술 위협에 공조하는 방향으로 협력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대해 “인태 지역 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역내 자유·평화·번영을 달성하고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연대를 강화했다”고 평가했다. 나토는 지난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법치에 기반해 중국과 러시아 등 팽창하는 권위주의 진영을 견제하는 ‘제8차 전략개념’을 채택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말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앞세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국가들과 연대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는 독자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개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유럽·대서양 국가들의 동맹체인 나토가 군사와 정보 분야까지 연대를 확산하는 무대가 됐다. 나토와 ITPP를 체결한 한국도 자연스럽게 외교 무대가 인도태평양을 넘어 유럽과 대서양까지 확장됐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나토에서 “저와 대한민국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가 완전히 복원되는 그날까지 여러분들과 함께할 것임을 약속한다”며 전쟁 종식과 전후 재건을 위해 한국이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오늘날의 복합위기 시대에 우리는 더욱 확고하게 연대해 나가야 한다”며 “우리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세계의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