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별 노조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13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번 파업에는 200개 지부 220개 사업장 8만5000명의 조합원 중 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최종 쟁의권을 확보한 122개 지부 140개 사업장의 총 조합원 6만여 명이 참가한다. 주40시간제와 의료기관 주5일제 쟁취를 요구하며 1만여 명이 참가한 2004년 총파업 이후 19년 만에 보건의료노조가 진행하는 최대 규모다. 빅5는 아니지만 상급종합병원 20곳에서 의사를 제외한 60여 개 직종이 참여해 의료공백이 불가피하다. 이미 현장 곳곳에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13일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고대의료원·경희의료원·아주대의료원·이화의료원·한림대의료원·한양대의료원 등 20개 사립대병원지부(28개 사업장), 부산대병원·전남대병원·전북대병원·충남대병원 등 7개 국립대병원지부(12개 사업장), 국립중앙의료원·국립암센터·보훈병원·한국원자력의학원 등 12개 특수목적공공병원지부(12개 사업장), 적십자혈액원·적십자병원·검사센터 등 26개 대한적십자사지부(26개 사업장), 경기도의료원·부산의료원·인천의료원·홍성의료원 등 26개 지방의료원지부(26개 사업장), 부평세림병원·광주기독병원·정읍아산병원 등 19개 민간중소병원지부(19개 사업장), 6개 정신·재활·요양 의료기관지부(6개 사업장)와 미화·주차·시설·보안 등 6개 비정규직지부(11개 사업장) 등이 이날 오전 7시를 기점으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전체 45개 상급종합병원 중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에 참가하는 상급종합병원은 20곳이다.
이들 단체는 전날(12일) 밤부터 전국 곳곳에서 전야제 행사를 갖고 서울로 상경했다. 오후 1시부터 광화문 동화면세점에서 산별총파업대회를 열고 3시부터 민주노총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와 거리행진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날 산별총파업대회에는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필수유지업무에 투입되는 조합원과 응급대기팀, 환자안내팀, 현장농성조, 임산부와 몸이 불편한 조합원 등을 제외하고 2만여명이 참가한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가량이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인 국립암센터는 파업이 예고된 13~14일 이틀치 수술을 전격 취소했지만 전일(12일) 노조와 논의 끝에 파업 참여 인원을 최소화하기로 합의했다. 병원 측은 혹시 모를 협상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수술 전 검사 등을 마친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시급성이 큰 수술과 외래진료 일부를 정상화할 예정이다.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병원들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예정된 파업 일정은 14일까지 이틀간이다. 노조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산별대회를 개최하고,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과 인천부천, 강원, 충북, 대전충남, 대구경북, 전북, 울산경남, 부산 등에서 산발적으로 산별총파업대회를 이어나간다. 다만 이틀간 정부와 사용자가 산별총파업 7대 핵심요구에 대해 실질적이고 전향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무기한 산별총파업투쟁을 이어간다고 못 박았다. 이틀 간 사용자와 정부의 태도와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요구에 대한 수용 여부를 바탕으로 중앙총파업투쟁본부 회의에서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 △적정인력 기준 마련 △의사 인력 확충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정상화를 위한 회복기 지원 △임금인상 10.7% 등 정당한 보상과 9.2 노정합의 이행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세웠다. 어디까지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착한 파업이라는 게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파업에 대한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파업에 나선다는 이유다.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등이 참여하는 14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종사자들이 현장에서 대거 이탈하게 된다면 이는 환자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에 심히 염려된다"며 "국민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의료대란의 불안을 가지게 만드는 총파업이 아닌 정부와의 충분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리적으로 현안을 해결해 나가라"고 촉구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노동조합으로서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자 사용자의 불성실교섭과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한 의료대란과 필수의료·공공의료 붕괴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라며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요구 실현을 위해 같이 싸워야 할 직종협회들이 보건의료노조 총파업투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고 날을 세웠다.
실제 간호법 제정에 반대해 의협을 필두로 13개 직역단체가 참여하는 보건의료연대 역시 파업 카드를 꺼내든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의료연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협상의 여지가 크지 않아 보인다는 데 있다. 자칫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국민들이 모든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 총파업 여파로 상급병원 수술과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고, 응급실에도 여파가 미치는 상황이다.
정부는 13일 시작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에 대해 “국민을 겁박하는 행위”라며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건의료 현안점검회의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건강에 막대한 피해 끼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언급했다. 정부 정책 결정에 따라 파업 연장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불법’일 수 있으며, 노조법에서 허용하는 파업의 권한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협상을 목적으로 두고 있고 협상의 당사자는 사용자 측이지 정부가 될 수 없다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 역시 방송에 출연해 “노조가 정부에 당장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라는 것은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업무개시 명령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해나가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