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압구정지구 재건축 설계 공모에 참여한 다수의 설계 업체들이 임대동을 따로 배정하는 설계안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정비사업 때 임대동을 별도로 짓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서울시의 ‘소셜믹스(사회적 혼합)’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시는 정비계획 수립 단계는 물론 건축 심의 과정에서 공공임대주택의 동별·층별 혼합 여부를 점검하고 있어 설계 변경을 하지 않을 경우 사업 지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희림건축은 설계 공모가 진행 중인 압구정3구역에 조합원 3900여 가구를 한강변 제3종 일반주거지에 배치하고 압구정역 인근 준주거용지에 임대주택 480가구와 일반분양 1560가구를 배치하는 안을 제시했다. 디에이건축은 한강변에 조합원 주동 6개동을 배치하고 폭 100m 규모의 공원을 지나 임대·일반분양 3개동을 배치하는 설계안으로 지난달 24일 압구정2구역을 수주한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조합동과 임대·일반분양동을 분리하는 방식이 서울시 지침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시는 2021년부터 ‘공공주택 사전검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임대주택(84㎡ 이하)을 특정 동에 몰리게 구성할 경우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재검토를 요청하고 있다. 계획이 이미 수립된 단지에 대해서도 건축 심의 단계에서 이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공개추첨제’도 조합동과 일반·임대동 분리 설계를 막는 요소로 꼽힌다. 202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공개추첨제는 조합원과 공공임대를 동일 표본에서 동시에 추첨하는 방식이다. 동일·동시추첨으로 진행되는 만큼 임대동으로 계획했던 동에 조합원이 배정될 수 있다. 실제 최근 조합원 동·호수 추첨을 마친 강남의 한 재건축단지에서는 조합원 30명가량이 소형평형만으로 구성된 동으로 배정됐다. 해당 동은 공공임대 물량인 전용 49㎡와 조합·일반·임대분양 물량인 전용 59㎡로만 이뤄져 있다.
공공주택 사전검토 TF와 공개추첨제는 신속통합기획을 포함해 서울시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정비사업에 적용되는 지침이다. 올 2월 정비구역 결정고시가 난 은마 아파트 계획안에도 ‘공공주택은 분양주택과 차별없이 마감재·외관 등을 동일하게 계획(동별·동내·층별로 혼합)할 것’과 ‘동·호수 배정시 조합원과 서울시가 동일·동시에 공개추첨방식으로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2021년 이후 서울시 내에서 이를 지키지 않고 인허가가 난 사업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설계 업계 관계자는 “임대동이 단지 고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조합이 많아 과거 임대동 분리는 필수 홍보 요소로 여겨져왔다”면서도 “이로 인해 소셜믹스 정책이 계속 강화됐고 현 서울시 기준에서 분리 설계로 인허가를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다만 “설계사무소에서 이를 조합에 설명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민간사업인 만큼 사업시행자인 조합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편 압구정3구역은 15일 총회를 통해 설계사를 최종 선정할 계획이며 4구역은 이달 말 응모 작품 전시를 시작한다. 5구역은 지난주 설계 입찰 공고를 내고 현재 응모 신청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