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주워도 5000원이 안 되니 밥 한 끼도 못 사 먹어.”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진 13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 고물상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1년 새 폐지 값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을 찾은 한 할머니는 “새벽 6시부터 12시간을 꼬박 일해 하루 네 번꼴로 고물상에 온다”며 “그래도 하루에 1만 원짜리 한 장 손에 쥐기도 힘든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압축상이 고물상으로부터 폐지를 매입할 때 ㎏당 76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1년 전(137원)과 비교해 반 토막 수준이다. 가정·상가에서 배출한 폐지는 보통 고물상이나 수거 업체를 통해 폐지 압축상으로 보내지고, 압축상은 압축한 폐지를 국내외 제지 공장에 판매한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른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로 종이 수요가 급감하자 제지 공장이 생산을 줄이면서 노인들이 동네 고물상에 폐지를 넘기고 받는 돈은 더 크게 감소했다. 서울 중구의 한 고물상 직원 김 모 씨는 “지난해 이맘때 ㎏당 100원씩 쳐드렸다면 지금은 30원꼴”이라며 “크게 줄어든 폐지 가격에 투덜대는 어르신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30년 가까이 폐지를 수거하고 있다는 고엽제 피해자 이달웅(80) 씨는 “IMF 시절에도 폐지로 생계유지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돌아도 과자 한 봉지 사 먹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폭염과 종잡을 수 없는 폭우도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시름을 깊게 만들고 있다. 체감온도가 30도를 넘은 이달 1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폐지 수집 노인은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골목을 돌아디니며 폐지를 주우려니 너무 힘들다”며 연신 땀을 닦아냈다. 특히 노인들은 여름철 쏟아지는 빗방울이 가장 야속하다고 말한다. 젖은 폐지는 상품성이 떨어져 고물상에서 제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종로구의 한 고물상 주인은 “물에 젖은 폐지는 20% 정도 감량해서 돈을 쳐준다”며 “수거 업체에서도 그렇게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에 6개월인 폐지 공공 비축 기한을 3개월 더 연장했다. 이달 기준 2만 5000톤의 폐지가 압축상에서 제지사로 공급되지 않고 환경부 차원에서 비축돼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때 공공 비축량이 절정에 달했다가 현재는 제지 생산량과 배출량이 둘 다 줄어 적체가 안정화된 상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