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이 상장사의 목표주가를 내린 보고서 수가 7개월 만에 상향한 보고서 수를 넘어섰다. 미국의 긴축 공포가 일부 완화하면서 코스피지수 자체는 순항하고 있지만 반도체와 2차전지 등 일부 대형주 외에 나머지 업종의 실적은 부진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금융감독원이 금융투자 업계에 매도 의견도 자신 있게 내라고 유도한 효과라는 해석도 나왔다.
17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국내 증권사들의 상장사 목표주가 하향 보고서는 총 215건으로 상향 보고서(202건)보다 많았다. 목표가 하향 리포트가 상향 리포트 수를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7개월 만이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의 긴축 공포가 커지면서 코스피지수가 한 달 동안 9.5% 하락해 2236선까지 주저앉았지만 이달 코스피는 오히려 2%가량 상승하며 2600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증권사별로는 NH투자증권(005940)이 가장 많은 24건의 목표가 하향 보고서를 냈다. 그 뒤를 하나증권(23건), 키움증권(039490)(22건), 신한투자증권(15건) 등이 이었다. 대형 증권사뿐 아니라 현대차증권(001500)(15건), 상상인증권(001290)(10건) 등 중소형 증권사들도 주요 종목에 대해 솔직한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증권사들의 목표가 하향 보고서는 업종과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이달 목표가 하향 의견이 가장 많이 나온 곳은 엔씨소프트(036570)·카카오게임즈(293490)·스튜디오드래곤(253450)이었다. 각각 8개 증권사가 목표가를 내렸다. 이어 아모레퍼시픽과 카카오·GS건설(006360)이 7건, GS리테일이 6건, 고려아연(010130)이 6건, LG생활건강(051900)이 5건의 목표가 하향 보고서를 받았다. 게임·화장품·유통 등 내수 시장과 관련 있는 종목 외에도 2차전지 업체인 SK이노베이션(096770)·고려아연·삼성SDI(006400)를 비롯해 쌍용C&E(003410)·영풍(000670)·신한지주(055550)·우리금융지주(316140) 등도 목표가 하향을 피하지 못했다.
증권사들이 각 기업 목표주가를 내린 것은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기대치를 낮췄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증시가 최근 2600선을 넘은 점도 반도체와 2차전지 일부 업종이 주도하는 장세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4월 이후 코스피지수가 5.62% 상승하는 동안 KRX지수 중 코스피 상승률을 웃돈 지수는 기계장비·반도체·건설·자동차·정보기술·에너지화학 등 6개에 불과했다. 코스피지수보다 수익률이 안 좋은 업종만 11개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시총 상위 기업 중심의 코스피50은 7.64%, 코스피100은 7.47%, 코스피200은 7.23% 올랐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시가 상저하고로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실적이 그렇게 양호한 것은 아니다”라며 “하반기 주요 기업의 실적 악화가 증시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달 12일 금감원이 국내외 증권사 10곳의 리서치센터장을 소집해 ‘국내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 신뢰성 제고’를 주문한 결과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도 3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보고서 개선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금감원은 이달 5일에도 금융투자협회에서 27개 국내외 증권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매도 보고서 활성화를 주문했다.
증권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공매도가 전면 재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 의견 하향이나 매도 보고서를 내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있다”며 “적정 가격 이상의 종목부터 걸러내고 목표가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