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이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매번 의례적으로 반복되는 논란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교과과정을 넘어서는 킬러 문항이 핵심 원인이라는 구체적인 지적과 함께 사교육 카르텔을 해소하겠다는 정책 의지도 표명됐다. 굳이 따지자면 카르텔보다는 마피아가 더 어울리겠지만 정책 의지의 결연함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지나친 사교육은 저출산의 한 원인이기도 한 만큼 비효율적으로 비대해진 사교육을 줄여보겠다는 정책 취지도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킬러 문항이 진짜 핵심일까.
진짜 본질은 대학에 대한 규제와 수능 점수 줄 세우기다. 등록금과 정원 규제가 상위권 대학에 심각한 초과 수요를 유발했기 때문에 입시는 학생들을 객관적 점수로 줄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수능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수능은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게 하는 시험이며 변별력을 위해 어렵고 쉬운 문제를 섞어 출제한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도 다른 쉬운 문제를 틀리면 상위권 대학에 가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대부분의 문제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기계적으로 풀고 소위 킬러 문항을 풀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사교육은 ‘문제의 유형을 파악하고 기계적으로 외운 해법을 적용해 빠른 시간에 답을 얻는 기술’을 반복 학습을 통해 습득시키는 데 주력한다. 창의력보다는 높은 점수가 우선인 것이다.
수능을 공교육 범위 내에서 출제한다고 달라질까. 공교육 범위를 넘는 문제와 넘지 않는 문제를 구분하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구분한다고 해도 입시가 학생들을 줄 세우는 한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교육은 바로 그 줄의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욕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수능 출제 범위가 제한될수록, 문제가 쉬워질수록 창의력보다는 반복 학습이 높은 점수를 얻는 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사교육 수요는 오히려 늘어난다.
진짜 중요한 점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맞닥뜨릴 문제는 공교육 범위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개인들이 헤쳐 나가야 할 문제들은 자신이 배운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해법을 찾아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공교육 범위 내 출제라는 고육지책의 취지는 알겠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사교육을 늘리고 학생들의 창의력은 저해하는 ‘장고 끝의 악수’가 될 뿐이다.
인공지능(AI)이 일상이 돼버린 현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출제되는 진부한 문제로는 절대 배양될 수 없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자신의 지식과 역량을 총동원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대학별 본고사가 일부 그런 역할을 한 적이 있지만 수능 체제 이후 이런 교육은 없어졌다. 본고사가 사교육 주범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다. 사교육은 상위권 대학에 대한 초과 수요와 수능 줄 세우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끝내 못 본 척한다면 제대로 된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 소위 이해찬 세대 때의 일이다. 1학년 1학기 신입생 수업에서 중간고사 직후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교수님, 문제가 안 배운 데서 나왔는데요.”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안 배운 데서 나왔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되묻자 그 학생은 “교과서와 강의 노트 어딜 찾아 봐도 답이나 풀이 방식이 나와 있지 않다”고 했다. 그 학생이 기말고사 몇 주 전에 또 질문을 했다. “교수님, 기말시험 범위는 어딘가요?” 나는 “기말시험도 안 배운 데서 나온다”고 답했다. 다행이 그 학생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충분히 창의적인 학생으로 성장해갔다. 당시에는 이해찬 세대라서 그랬으려니 했는데 앞으로는 이런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훨씬 많아질까 정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