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입찰 담합에 줄줄 샌 정부 예산… 32개사에 과징금 409억

낙찰가가 '입찰 상한가' 넘는 경우 80% 달해
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 12년 만 또 제재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1개 백신제조사와 6개 백신총판,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해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며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7000억 원 규모의 백신 입찰에서 담합해 정부 예산을 낭비시킨 백신제조사와 백신 총판 업체 등이 과징금 409억 원을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담합한 행위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 원을 부과한다고 20일 밝혔다. 백신 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6개 백신 총판(광동제약(009290)·녹십자(006280)·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006120)·유한양행(000100)·한국백신판매), 25개 의약품 도매상은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초기에는 의약품 도매상끼리 담합했으나 정부가 2016년부터 제3자 단가 계약 방식(정부가 전체 물량의 5∼10% 정도인 보건소 물량만 구매)을 정부 총량 구매 방식(정부가 연간 백신 물량 전부 구매)으로 바꾸자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백신 총판이 낙찰받았다.


이 담합은 정부 예산 낭비로 이어졌다. 이들이 담합한 대상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대상 백신이었기 때문이다. 담합 범위는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파상풍 백신, 자궁경부암 백신, 폐렴구균 백신 등 24개 품목, 매출 7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장기간 담합 행위로 입찰 담합에 필요한 들러리 섭외나 투찰 가격 공유도 손쉽게 이뤄졌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낙찰 예정자는 전화 한 통만으로 들러리를 섭외할 수 있었고, 낙찰 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반복 수행하면서 각자 역할이 정해지면 굳이 투찰 가격을 알려주지 않아도 담합이 완성됐다.


이에 따라 낙찰 가격이 ‘상한 입찰가’로 인식되는 ‘기초금액’의 100%를 넘는 경우가 147건 중 117건으로 80%를 넘었다. 오동욱 공정위 입찰담합조사과장은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100% 미만으로 낙찰받는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입찰 담합으로 예산이 낭비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 등 3개사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2011년 6월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입찰 담합에 참여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됐다. 사업자별 과징금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 3억 5100만 원, 녹십자 20억 3500만 원, 보령바이오파마 1억 8500만 원, SK디스커버리 4억 8200만 원, 유한양행 3억 2300만 원, 한국백신판매 71억 9500만 원 등이다.


오동욱 공정위 입찰담합조사과장은 “백신 제조사가 공급 확약서를 이용해 의약품 도매상에 대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며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추후 질병관리청과 제도 개선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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