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남양유업 계약 파기의 비싼 대가


투자 업계 종사자들이 공공연히 하는 말이 있다. “시스템이 미비한 기업과 거래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이런 회사일수록 오너 등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파워가 막강해 이미 정해진 합의나 계약마저도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홍원식 남양유업(003920) 회장과 사모펀드가 벌이는 경영권 매각 소송전이 장기화하는 것이 이 같은 격언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대법원은 최근 상고심 진행 여부를 앞두고 양측의 심리를 더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홍 회장은 2021년 회사를 팔기로 했지만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투자자에게 회사를 팔겠다고 또 다른 계약을 맺었다.


올 초 2심 판결까지 사모펀드가 모두 승리해 대법원 역시 추가 심리 없이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가자 남양유업 주가는 하루 만에 11% 급락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에 연간 800억 원씩 적자가 쌓이는 등 경영 상태가 악화됐는데 이런 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해서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한 사모펀드와 5년 넘게 갈등을 빚고 있다. 2012년 외부 투자를 유치하면서 2018년까지 교보생명의 상장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한 것이 발단이었다. 신 회장은 당시 사모펀드에 상장 실패 시 직접 지분을 되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계약을 둘러싼 양측의 이견이 분출하며 수년간 국제 소송전에 수백억 원을 쏟아붓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 소재한 5000억 원 규모의 대형 빌딩 매각 입찰전이 열렸다.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입찰에 참여했는데 패션 기업 F&F(383220)가 돌연 등장해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F&F는 그러나 건물 실사를 마친 후 갑자기 인수 취소를 선언했다. F&F를 믿고 공동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던 부동산 운용사나 매각 측 모두 얼마나 황당했을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합리적 이유 없이 주요 경영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기업가는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값 비싼 법률 자문을 받아가며 계약서까지 썼는데도 이를 내동댕이치면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시장의 힘을 빌려야 할 때는 또 찾아온다. 신뢰를 잃은 기업과 기업인은 결국 어떤식으로든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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