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매년 10만명 부족… 공급망 확보 ‘아킬레스건’

■TSMC, 美공장 가동 연기
반도체지원법 혜택에 기업 쇄도
2030년까지 제조업 수요 400만
충원 가능 인력은 절반에 그쳐
기업들 산학협력·인재확보 매진
배터리 산업 등으로 확산될수도



TSMC의 반도체 생산 계획 연기로 이른바 ‘바이드노믹스’의 기저에 있는 기술 인력 부족 문제가 재차 부각되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제시한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반도체, 전기자동차(EV), 차세대 배터리 등 첨단기술 투자가 잇따랐지만 정작 이를 제때 추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경제 패권 전쟁의 와중에 공급망 강화를 통한 글로벌 기업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전문 인력 부족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분야에도 이 같은 인력 부족 문제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 시간) 애리조나 공장 가동이 늦춰져 바이든 정부의 주요 입법 성과에 큰 차질이 생겼을 뿐 아니라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해당 공장에 미국 사상 최대 외국인 투자 규모 수준인 400억 달러(약 51조 3600억 원)가 투입되며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계획에서 핵심 업적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연기 결정이 예상된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달 말 닛케이아시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미 애리조나 공장 건설 비용이 TSMC의 예상을 초과했으며 일정도 최소 3~6개월 밀린 상태”라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소식통은 “미국 근로자들의 임금이 대만보다 몇 배 이상 높은 반면 제조 시설 건설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은 부족하다”며 “이로 인해 설치 작업 여러 건이 지연됐다”고 전했다. 이에 TSMC가 현지 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대만 인력 500여 명을 파견하는 쪽이 비용상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반도체 제조 장비 설치는 생산망 구축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이자 가동이 얼마나 빨리 시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닛케이는 “TSMC가 대만에서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까지는 30개월도 걸리지 않는 반면 미국에서는 3년 이상이 필요할 수 있다”며 “새로운 나라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난관인 상황에서 미국의 인력 부족 문제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미국이 동맹국 기술 기업들을 자국 공급망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전문 인력이 부족해 지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며 “행동보다는 말로 프렌드쇼어링이 이뤄지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기술 인력난은 TSMC를 넘어 미국 노동시장 전체가 직면한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숙련공들이 대거 은퇴한 데다 최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학생들 대부분은 정보기술(IT) 업계를 선호해 인력 수급 불균형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에 반도체 복합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인텔 역시 반도체 전문 인력은 물론 공장 건설 노동자를 모집하는 데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미국이 향후 수년간 7만~9만 명에 달하는 반도체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맥킨지앤컴퍼니 역시 2030년까지 미국 반도체 산업이 30만 명 이상의 엔지니어와 9만 명 이상의 숙련공 부족 사태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달 초 전미제조업협회는 2030년까지 제조 업체 채용 수요가 400만 명에 달하겠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인 210만 명을 구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한 해 동안 1조 달러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미국에서는 반도체 인재 양성 및 채용 전쟁이 한창이다. 인텔·TSMC 등은 주마다 공과대와의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력 확보에 나섰으며 백악관은 앞서 5월에 피닉스·콜럼버스·볼티모어·오거스타·피츠버그 등 5개 도시를 ‘인력 허브’로 지정하고 지방 공무원, 고용주, 조합, 커뮤니티칼리지, 고등학교 등의 협력을 통해 고급 기술 인력 확보를 적극 추진하도록 했다. 미국 공급망 진출에 앞서 자국 인재를 양성해 현지에 파견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30년까지 배터리 관련 인력 3만 명을 키우겠다는 방침을 올해 3월 구체화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