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장 "기술·콘텐츠 아우르는 IP정책 통해 '지식강국' 길 닦을 것"

[서경이 만난 사람 - 백만기 국가지식재산위원장]
◆대담=성행경 IT부장
90년대 '반도체설계법'처럼 'AI 저작권법' 등 서둘러 추진해야
신기술엔 실패용인 문화 만들고 성숙단계땐 '플랫폼 혁신' 중요
특허출원 건수보다 질적가치 우선…韓 '특허 허브' 잠재력 충분

“1990년대 반도체 산업 성장에 맞춰 만들어진 ‘반도체설계법(반도체 집적회로의 배치 설계에 관한 법률)’처럼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창작물 권리를 규정할 새로운 법제가 제정돼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현행 저작권법은 AI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인간이 해내지 못하는 창작을 AI가 해내는 시대가 온 것은 분명하니까요.”


백만기(69·사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은 17일 서울 중구 정동빌딩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지식재산(IP) 이슈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생성형 AI와 관련해 특허·저작권법 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기술 특허, 콘텐츠 저작권, 디자인 같은 무형자산을 아우르는 IP 분야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책 연구, 자문, 입법 권고 역할을 하는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다. 백 위원장의 최근 관심사 중 하나는 챗GPT 열풍을 계기로 떠오른 생성형 AI의 저작권 논란이다. 국내외 많은 법원이 아직은 ‘AI 발명자’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그럼에도 국내 AI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발자나 기업에 합당한 보상을 해줄 권리 보호 장치가 필요하며 미국·유럽 등 해외 주요국이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입법 추진에 나선 만큼 우리나라도 서둘러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게 백 위원장의 견해다. 그는 “AI를 개발한 사람이나 기업마저도 아무런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면서 “반도체든 AI든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마땅한 보상을 하는 것은 산업 성장의 기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반도체설계법은 반도체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던 1990년대 초 기존 특허법이나 디자인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반도체 집적회로(IC·칩) 설계’라는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재위는 반도체설계법을 참고해 이달 ‘초거대AI 등장에 따른 IP 쟁점 대응 방안 연구’ 사업에 착수하고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를 비롯해 관계 부처 및 민간 전문가와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백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AI가 인간이 아니어서 특허·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지만 문제는 AI도 창작성이 있다는 것이고 AI를 활용해 예기치 못한 발명을 했더라도 아무도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기존 저작권법과 특허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법률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IP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라고 설명했다.


백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임명된 후 정부와 민간을 오가며 축적한 경험과 안목을 바탕으로 지재위의 비전을 ‘창의성 가득한 멋진 지식 강국’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그는 “‘창의성 가득한 멋진 지식 강국’은 MZ 세대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폭발시켜 기존 제조업의 하드파워뿐 아니라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파워까지 키우겠다는 의미를 담았다”며 “기술과 콘텐츠 전략을 모두 관통하는 IP 정책을 통해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지식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위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을 지낸 만큼 최근 과학기술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국가 R&D 효율성 제고 방안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과거에는 선진국 기술을 국산화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도약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국가 R&D의 목표를 정의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성공 가능성이 크고 당장 상품 개발로 이어지는 연구는 민간에 맡기고 정부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 경우 파급력이 큰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 위원장은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신기술에 대해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을 만들고 오히려 실패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성과로 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성숙한 산업 기술에 대해서는 기술 자체보다는 공급 사슬과 인력을 포괄한 생태계를 육성하는 ‘플랫폼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1990년대 진행됐던 ‘G7 프로젝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G7 프로젝트는 글로벌 과학기술 7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과학기술처를 중심으로 고해상도(HD) TV 등 신기술 개발에 도전했던 국가 R&D 사업이다. 산업적으로 현재 삼성전자·LG전자 등을 필두로 글로벌 TV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온 것은 물론 국가 R&D 시스템을 다지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특허 전략도 백 위원장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국가 R&D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사업화의 핵심 지표인 특허 관리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특허출원 건수 기준으로 미국·중국·유럽·일본과 함께 5대 강국 반열에 올랐으며 인구당 특허출원 건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며 “다만 양적 성과에 치중해 질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WIPO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제 특허출원 건수는 2만 2012건으로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했다. 반면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R&D 연구 성과 기반 창업은 전체 창업의 0.07%에 그쳐 실질적인 기술사업화 성과는 부족한 상황이다. 백 위원장은 “특허 보호 기간은 20년이지만 통상 15년차부터 기술이 사업 가치를 인정받고 활발히 거래된다”며 “15년은 지나야 R&D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특허출원 건수만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돈 되는’ 특허를 선별해 관리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제안했다. 백 위원장은 “5대 강국에 등록할 가치가 있는 특허 위주로만 관리 비용을 집중 지원하고 나머지 기술은 ‘IBM 테크니컬 저널’처럼 학술지에 발표해 다른 사람이 특허를 받지 못하도록 방어만 해도 된다”며 “특히 일부 연구기관과 대학에서 실시하는 특허출원 건수 기준의 정량평가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특허 허브’ 시장에 대한 선점 필요성과 한국의 잠재력도 강조했다. 특허 허브는 특허 검색·관리·분석을 통해 고객의 특허출원, 분쟁 대응, 신기술 개발, 신사업 진출에 필요한 컨설팅을 해주는 플랫폼 서비스다. 백 위원장은 글로벌 특허 허브 시장에서 한국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으로 특허의 ‘양적 성과’를 꼽았다. 그는 “한국이 세계 4위 특허 보유국이 되면서 각국이 유독 한국 특허청에 국제 특허 조사를 의뢰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비중이 커진 한국 특허를 조사해야만 국제 특허의 완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어 특허 문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우리나라 특허 소송의 낮은 신뢰도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백 위원장은 지적했다. 그는 “국제 특허 허브는 검색뿐 아니라 소송 허브의 역할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소송 허브가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소송 결과가 해외 다른 나라들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도록 한다는 의미인데 현재 우리 특허법원의 국제적인 신뢰도가 낮다는 걸림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법원은 미국·독일 등과 비교해 판결이 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승소해도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액이 적어서 우리 기업들조차도 해외 법원에 판단을 맡기는 실정”이라며 “대법원·법무부와 협업해 연말까지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백 위원장은 우수 인재들의 의대 선호 현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연구자에 대한 보상이 큰 미국·대만과 달리 한국은 과학기술인의 평생기대소득이 의사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라는 현실 진단과 함께 개선책으로 직무발명보상금의 과세 완화를 제시했다. 그는 “현재 직무발명보상금은 근로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에 이른바 ‘연구 대박’이 터져 수억 원에서 수십 억 원의 보상금을 탈 경우 최대 45%의 세율이 매겨진다”며 “이는 30%인 로또 당첨금보다 높은 세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행 조세제도는 세수 유입 효과보다는 발명자의 사기 저하로 이공계 활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더 큰 상황”이라며 “직무발명보상금을 더 낮은 세율 적용을 받는 기타 소득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e is…


△1954년 서울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KAIST 전기및전자공학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1993~1996년 통상산업부 산업기술정책과장 △1998~1999년 특허청 심사4국장 △1999년~ 김앤장 변리사 △2010~2011년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 △2011~2015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2017~2019년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 △2021년~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이사장 △2022년~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 위원 △2022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