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 ‘약한 고리’ 부동산PF발 위기 확산 우려…선제적 대응 절실”

◆곽노선 차기 한국금융학회장(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 산업은 복지 수단 아니다…금융 정상화 서둘러야
DSR 기본으로 삼아 가계부채를 규제하는 방식 바람직
부동산 금융 모니터링 체제로 시스템 리스크 차단하고
금융사 대형화·국제화 위해 금산분리 완화 적극 검토를

국내외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000조 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와 130조 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10년 전보다 14배 폭증한 해외 부동산 펀드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차기 한국금융학회 회장인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가계 부채는 소비 위축을 초래해 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것”이라면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기본으로 삼아 점차 예외 조건을 줄이는 방식으로 부채를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더 이상 금융 산업을 복지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옥석을 가려 그동안 미뤄왔던 금융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기 한국금융학회장인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금융 산업을 복지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그동안 미뤄왔던 금융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해외 금융시장의 불안은 어느 정도 진정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투자했던 해외 상업용 오피스 빌딩은 높은 공실률로 인해 잠재적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국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외환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더 크게 걱정해야 할 분야는 실물경제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경제가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실물경제는 중장기적으로 금융시장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내 시장은 어떻게 보는가. 가계 부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가계 부채는 단기적으로 큰 불안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금융사들이 차주의 신용도에 따른 위험 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신규 대출자의 신용도 역시 높은 편이다. 문제는 변동금리 비율이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높아진 이자 부담이 소비 위축을 초래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과도한 부채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 다만 당국도 갑자기 특정 규제를 통해 대출을 억누르는 방식보다는 DSR을 기본으로 삼아 점차 예외 조건을 줄이는 방식으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DSR 등 규제 방식을 놓고 말들이 많은데.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는 금융회사들의 리스크를 낮춰주는 제도다. 반면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DSR은 차주의 부담 능력에 대한 리스크를 따져 본다. LTV 규제 방식은 청년층이 집을 사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소득이 많아도 모아놓은 돈이 없어 내 집을 못 구하는 불공정한 게임을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LTV를 완화해주는 방향은 바람직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가계 부채 규제를 DSR로 통합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차주의 부담 능력에 따라 대출 가능 총액을 규제해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일부 예외 규정은 불가피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DSR로 일괄 규제하는 것이 형평성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부동산 PF 대출이 ‘시한폭탄’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PF다. 최근 미분양 주택이 늘어나면서 부실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사들이 일단 연장해주고 있어서 아직은 노출이 지연되고 있다. 만약 문제가 커지면 ‘약한 고리’인 중소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캐피털, 중소 증권사 등이 타격을 입게 된다.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도록 선제적이고 면밀한 대처가 필요하다.


-최근 새마을금고도 자금 이탈에 시달렸는데.


△일단 뱅크런(대규모 자금 이탈) 위험에서는 벗어났지만 부실화 속도를 늦추는 데 머무르고 있다. 무엇보다 새마을금고는 지배 구조가 문제다. 행정안전부가 관리 주체를 맡아 일부 금융 감독을 받고 있는 구조에서는 문제가 누적될 수 있다. 지금 당장 새마을금고의 관리 주체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금융 측면에서 일관되고 정례화된 감독이 필요하다.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이는 방안은 어떻게 보는가.


△20년째 5000만 원으로 유지돼온 예금자 보호 한도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예금자 보호가 능사는 아니다. 예금자 보호 한도를 올리면 수많은 예금자들이 감시하고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 ‘시장 규율’의 힘은 약해지고 결국 관리·감독의 부담은 모두 감독 당국으로 몰리게 된다. 중장기적으로 금융권의 지배 구조와 감독 체계를 바로잡아가는 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은행이 올해 2월부터 네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는데.


△소규모 개방 경제인 한국의 금리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정책 금리에 비해 대체로 높았는데 지금은 역전된 상황이다. 글로벌 투자 자금의 이동은 금리만이 아니라 기업 실적이나 미래의 환율 변동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은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대규모 자금 이동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만약 올해 미국이 한두 차례 금리를 올린다면 우리도 한 번 정도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금융 분야의 발전 속도가 한참 늦다. 주택금융의 경우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DTI나 LTV, DSR 등을 운영해왔는데 우리는 이를 규제로 통제하는 상황이다.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 수동적으로 규제에 안주하면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은행들은 기업 금융에 이어 부동산 담보 대출, 가계 신용대출 등 전통적인 금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리스크를 감당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과도한 금융 규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금융 부문은 산업 특성상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규제와 자율이 조화를 이뤄야 된다는 점이다. 경쟁을 촉진하면서 시스템 리스크가 쌓이는 사태를 막도록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예대마진 의존도를 낮추려면 업무 영역 조정을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칸막이를 허무는 노력이 일정 부분 필요하다. 역대 정부마다 실물이 우선이고 금융은 이를 지원하는 분야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할 수 있는 것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다 규제하는 포지티브식 규제 위주이다 보니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반면 미국에서는 법에서 정한 것 외에는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해주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도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의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최근에는 금융사에 대한 정치권의 요구 사항도 많아지고 있다.


△금융시장은 정책 규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융 당국이 상생이나 이자율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 관리에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은행을 상대로 공공적인 성격을 갖는 기금 지원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부당하다. 특정 계층의 대출 원금 탕감·축소 등 복지 정책과 관련된 사안을 민간 금융에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금융 논리와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정부가 별도의 기금을 마련해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 이제는 관치금융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도 다가오는데.


△코로나19 당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이뤄진 대출 원금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가 일단 9월부터 종료되기 시작한다. 다만 자율 협의로 만기 연장은 2025년 9월까지, 상환 유예는 2028년 9월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 문제는 경영난이 코로나19로 인한 것인지 구조적인 탓인지를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원래 사업성이 낮았고 수익성이 떨어진다면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이제는 외부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금융시장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금융의 정상화’가 필요한 때다.


-금융회사의 대형화·국제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금융회사의 장기적 과제가 대형화·국제화다. 하지만 ‘금산(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라는 구조적 테두리 내에서 추진해야 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금융회사의 규모가 커져야 리스크 관리와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다. 우리도 과감히 규제를 완화해 대형화를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동산 규제에서 금융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데.


△부동산 시장에서 금융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은이나 금감원 등에 별도의 부서를 만들거나 독립적인 관리 감독 모니터링 조직을 만들어 시스템 리스크를 통제해나갈 필요가 있다. 개별 저축은행이나 소규모 금융회사들의 부실이 전반적으로 나타나면 금융 시스템 불안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에서 금융의 역할은 무엇인가.


△스타트업 중심의 미래 성장 동력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금융이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선진 금융일수록 스타트업을 성장하게 만드는 생태계를 갖고 있다. 우리도 프로젝트 심사부터 리스크 관리, 수익성 전망 등을 잘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금융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금융의 역할은 자원을 잘 배분해서 될 만한 사업에 투자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데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



◆He is…


1963년 충남 조치원에서 태어나 서대전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A&M대 교수, 동국대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강대 경제대학 학장·경제대학원장과 한국은행 통화정책 자문위원을 지냈다. 지난달 차기 한국금융학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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