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장님 지시 사항"…구명조끼보다 '빨간티' 챙긴 해병대

예천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작업 복장 지시 논란

지난 19일 오전 8시 51분쯤 채상병이 속한 해병대 수색조가 보문교 인근 하천 속에서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예천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에게 구명조끼가 지급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해병대임을 과시하라’는 사단장 지시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4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실종자 수색 작업 전날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와 복장 점검을 한다'는 공지가 내려왔다. 해당 공지에는 구명조끼 등 안전과 관련한 사항은 빠진 채 복장 통일만 강조했다.


해병 1사단에 근무 중이라는 A간부는 “피해복구 작업 기간 1사단이 현장을 방문한 뒤 ‘미흡한 사안’에 대한 지시가 내려왔다”며 사단장 지시사항 몇 가지를 나열했다.



경북 예천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 당시 사단장 방문으로 공지된 지침.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시사항은 △책임지역 작전수행에 대한 설명 미흡, 이는 군인다움이 미흡한 것 △복장 착용 미흡, 가급적 ‘해병대’임이 눈에 확 띌 수 있도록 적색티를 입고 작업할 것 △특히 (채상병 소속부대인) 포병부대 경례 미흡하다며 ‘부대장은 현장지휘 똑바로 할 것’ 등이다.


지침에는 ‘사단장님 강조사항’이라며 ‘하의 전투복, 상의 적색 해병대 체육복, 정찰모’라고 복장을 규정을 강조했다. 체육모와 컴뱃셔츠는 안되며, 사단장 현장 지도 때 복장 점검이 예상된다는 내용도 세세하게 적혔다. 하지만 구명조끼나 안전 장비에 대한 지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러한 사단장의 지시는 수색 과정에서 해병대 상징색인 ‘적색티’ 착용만을 강조하게 했으며, 구명조끼의 필요성을 알았어도 적색티를 가릴 우려에 구명조끼를 굳이 입게 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병대 측에서는 구명조끼 착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조차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용선 해병대 공보과장은 지난 24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수변 지역에서의 실종자 수색 작전기간 구명조끼 착용 등 대민 지원 형태별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다 구체적으로 위험 상황별 안전대책과 현장 안전조치 요령을 보완 중”이라고 밝혔다.


해병대가 포상 휴가를 걸고 실종자 수색을 독려했는지에 대한 질의에는 “14박 15일 포상 휴가 조치는 독려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신을 찾은 병사의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휴가 기간을 부여한 것”이라며 “사고 원인과 직접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해병대는 또 순직한 채 상병의 동료들의 주말 출타와 면회가 제한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주말 간 외출자가 3명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부인했다.


한편 채 상병은 지난 19일 오전 9시쯤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부에서 구명조끼 없이 실종자 수색 임무를 수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14시간 만에 내성천 고평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당시 보문교 부근에서 수색 작업에 나선 해병대원은 39명으로, 이들은 일렬로 4m 정도 거리를 두고 9명씩 ‘인간띠’를 만들어 하천 바닥을 수색했다. 채 상병과 동료 2명은 물속 발 아래 지반이 꺼지면서 급류에 휩쓸린 것으로 전해졌다. 동료들은 수영해서 빠져나왔지만, 채 상병은 급류에 그대로 떠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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