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과 2차전지 등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상장 문턱을 대폭 낮춘다. 시장에서 잠재력을 검증받은 기업은 기술 평가 과정을 간소화하고 상장 심사 기간도 30% 단축한다. 일찌감치 ‘될성부른’ 기술 기업에 자금 조달 기회를 확대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27일 민관 합동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술특례상장제도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한국거래소·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 10개 기관이 6월 말부터 논의에 나섰고 14가지 세부 과제를 확정했다.
우선 첨단·전략기술 분야 기업 중 잠재력을 검증받은 기업은 단수 기술 평가를 허용하는 ‘초격차 기술특례’가 신설된다. 기존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한 단계 더 완화해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보다 쉽고 빠르게 상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기술특례상장은 혁신 기업의 코스닥 상장을 장려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됐다. 복수의 전문 평가 기관 기술 평가 또는 상장주선인(증권사)의 성장성 평가가 있으면 질적 요건을 중심으로 심사한다. 초격차 기술특례는 지금까지 기존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대해서만 허용되던 단수 기술 평가가 도입된다. 국가전략기술육성법상 국가전략기술(50개, 과기정통부 지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상 국가첨단전략기술(17개, 산업부 지정) 기업 중 시가총액이 1000억 원, 최근 5년간 투자 유치 금액이 100억 원 이상인 기업이면 신청할 수 있다.
초격차 기술특례 대상 기업은 중견기업이 최대 출자자라도 특례상장 신청이 가능해진다. 중소기업이 기술 연구를 맡고 사업화는 중견기업이 하는 협력 모델(오픈이노베이션)이 많은 현실을 고려했다. 다만 최대 출자자인 중견기업의 출자는 50% 미만으로 제한했다.
심사 단계에서 복잡한 절차도 대거 생략된다. 기술성이나 사업성이 아닌 사유로 상장에 실패한 기업이 6개월 이내에 상장을 재도전할 때 ‘신속심사제도’를 적용해 단수 기술 평가를 한다. 심사 기간도 45영업일에서 30영업일로 줄어든다. 상장 예비 심사와 증권 신고서를 심사하는 거래소와 금감원 간 정보 공유를 확대해 중복 심사 요소도 줄인다.
상장 문턱을 낮추는 만큼 투자자 보호 장치도 신설했다. 주관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상장 후 2년 이내에 부실화하면 해당 기업의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가 이후 기술특례상장을 주선할 때 6개월간의 풋백옵션(약정한 날짜나 가격에 실물이나 금융자산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을 부과한다. 이를 통해 주가가 하락하면 공모 주주들에게 증권사가 약정했던 가격에 주식을 되사줘야 한다. 인수 주식 보호예수 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했다. 주관사별 기술특례상장 건수·수익률 등의 정보도 거래소에서 공시할 예정이다.
이세훈 사무처장은 “잠재성장률 저하를 막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혁신 기업의 상장을 활성화하고 모험자본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정책 자체는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수요에 따라 초격차 기업이 결정된다면 진정한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스타트업들이 독립성을 가질 수 없게 되는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