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것은 과정이나 절차상의 평등을 말한다. 과정이나 절차상의 평등을 통해 공정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을 위반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결과가 바로 바람직한 결과의 평등이다. 즉 과정이 투명하고 절차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는 개인적인 결과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떠나서 공정이 존재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본질은 매도인과 매수인이 만나서 상호 간에 원하는 조건에 따라 거래가 체결되는 장소라는 점이다. 자본시장은 자금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장소이고 전문적인 중개인의 주선 행위를 통해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는 곳이다. 중개인은 자신이 회원의 자격으로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에서 정한 규칙을 준수하면서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거래가 체결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환경들이 조화롭게 움직이게 된 결과 자본시장은 그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자본시장에서 자금의 공급자는 투자자들이다.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투자하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다음 투자 결정을 하고 증권 등의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투자로부터 수익을 기대한다. 개인투자자들은 때로는 전문적인 분석가를 보유한 금융투자 업자의 도움을 받게 된다.
제도적 정비가 잘돼 있는 사회는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정미소의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곡식을 빻고 물레방아도 돌리면서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나 톱니바퀴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 있고 생산된 결과물에 대해 무임승차하는 쥐들이 드나드는 구멍이 있는 곳에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우리 자본시장의 효율성은 어떠한가. 과연 자본시장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자들의 신뢰는 굳건한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자신 있게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톱니바퀴에 기름칠이 마르고, 속이 비어 있는 곡식을 섞고, 결과물이 채 나오기도 전에 옆으로 빼 가는 참새들이 있고 그리고 결과물을 소비자들에게 내어줄 때 곡식과 겨가 섞여 있다면 그 정미소에 대한 신뢰는 사라지게 된다.
우리의 자본시장에는 잘 정비된 톱니바퀴인 규칙이 존재하고 있다.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도록 기름칠하고 정해진 양을 충실하게 지키고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자본시장의 감독 기관은 깨어 있는가.
규칙을 위반하는 자에게 정확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그 시장에 대해 투자자는 신뢰를 거둬들인다. 그것이 합리적인 투자자다. 법률의 위반인지, 도덕의 문제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땀과 노력의 결과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지 여부다.
최근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차액결제거래(CFD) 사태, 루나·테라, 김치 코인의 문제 등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요소들이다. 언행일치, 즉 부당이득에 대한 과징금이나 징벌적 배상제도 등의 도입을 외치기 전에,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법률 위반의 잣대를 들먹이기 전에 언행불일치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공정과 정의가 살아 있는 자본시장의 모습이다. 이러한 자본시장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모습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