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아픔 보듬은 평화의 선율…평창 여름밤을 물들이다

◆키이우 비르투오지가 그린 비발디 '사계'
전쟁 참화 속 대관령음악제 내한
입장하자마자 박수갈채 쏟아져
이지윤과 협연 '사계'가 하이라이트
봄바람부터 폭풍우 겨울추위까지
차분한듯 무심한 자연의 시간 선사

27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중 키이우 비르투오지의 공연 사진. 사진 제공=평창대관령음악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자연은 선선하고 맑다. 자작나무가 드리운 새하얀 설경도, 파릇파릇한 새싹의 기운이 솟아나는 봄 풍경도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거칠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자연과 다르지 않다. 제20회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우크라이나 악단 ‘키이우 비르투오지’는 비발디의 ‘사계’를 통해 보편적이고 친숙한 자연의 세계를 그려냈다.


27일 밤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음악제 공연에서는 키이우 비르투오지 오케스트라와 4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참여해 무대를 올렸다.


2016년 창단된 키이우 비르투오지는 모스크바 출신의 첼리스트 드미트리 야블론스키가 상임지휘자와 예술감독을 맡으며 이끌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우크라이나·이스라엘·아제르바이잔 등 국가에서 120회 이상 공연을 펼치고, 세계적 음반 레이블 낙소스 레코드와 협업해 7장의 음반을 발매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 왔다.


지난해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들이 모국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앞서 서울경제신문과 나눈 서면 인터뷰에서 야블론스키는 이들이 현재 작곡가 알렉세이 쇼어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 키에티에 머무르고 있다고 밝혔다. 야블론스키는 “우크라이나의 끔찍한 상황에 대해 나의 슬픔을 설명할 길이 없다”면서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지만 우크라이나가 재건되고 모든 비극이 사라질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들은 음악을 통해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알리고 있다.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첼리스트 양성원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해서 키이우 비르투오지를 초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관중에게도 메시지가 닿은 것일까. 공연 시작 전 키이우 비르투오지 오케스트라가 입장하자 청중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유난히 힘차게 쏟아지는 박수에는 오케스트라를 향한 격려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우크라이나 체임버 오케스트라 키이우 비르투오지 단원들이 27일 평창대관령음악제 공연을 마친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평창대관령음악제


오케스트라의 첫 연주는 세계적인 실내악의 대가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기욤 쉬트르와 실내악 멘토십 프로그램 학생으로 선정된 아스트 콰르텟의 김성문이 함께했다.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통해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이 평행하듯 교차하는 정교한 매듭을 구성했다. 3악장에서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바뀌면서 신선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이 ‘봄’과 ‘여름’을, 박지윤이 ‘가을’과 ‘겨울’을 협주한 비발디의 ‘사계’는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저명한 봄의 1악장이 연주되자마자 생동감 넘치는 계절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그리는 여름 다음으로는 풍족한 가을의 정경을 그려냈다. 안락한 느낌을 주는 ‘겨울’의 2악장이 포근하게 어우러지면서도 이어진 3악장에서는 순식간에 급변하는 겨울 바람의 매서움을 표현했다. 야블론스키는 “예술가들은 때로는 차분하고, 때로는 분노를 표하면서 때로는 무심한 자연의 면을 항상 표현하고 싶어 한다”면서 “나에게 자연은 재현될 수 없는 궁극적인 예술 형태다”라고 설명했다.


야블론스키는 버르토크의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토’ 무대에 합류해 지휘를 펼쳤다. 강렬하게 강약을 조절하고 자유자재로 헝가리풍의 리듬을 펼치는 전개 속에서 오케스트라는 야블론스키의 지휘에 맞춰 날카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어지는 앵콜 무대에서 야블론스키는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을 짤막하게 설명하고 활기찬 선율을 선보이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날 공연이 끝난 후 키이우 비르투오지는 28일 춘천과 30일 동해에서 찾아가는 콘서트로 관객을 맞이했다. 29일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는 소프라노 서예리와 함께한 공연으로 바루크 벌리너의 ‘야곱의 꿈’을 아시아 초연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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