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25일 경기도 안산의 한 빌라.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이 퍼졌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며 간절히 비는 목소리도 들렸다. 동업자이자 동거인인 A 씨를 향한 B 씨의 무차별적인 폭행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B 씨는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고 때렸다. 집에 놓여 있던 1㎏의 아령을 사용하기도 했다. 폭행은 A 씨가 정신을 잃고서야 멈췄다. B 씨는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쓰러진 A 씨를 방치했다. 부검 결과 A 씨의 사망 원인은 속발성 쇼크였다. 코와 위턱·양쪽 어깨·허리뼈·등뼈가 부러지며 발생한 피하출혈이 체내 혈액을 감소시켜 숨졌다는 것이다.
언뜻 동업자 간의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보이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수사를 맡은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공판부(부장검사 송명섭) 권종완 계장은 일반적인 상해치사 사건으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다고 판단했다. B씨에 대한 A 씨 대응은 다소 미숙해 보였다. A 씨를 향해 B 씨가 소리치는 모습을 다수 목격했다는 증언과 집안에서 폭행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렸다는 이웃 주민의 녹음파일 등도 차례로 확인됐다. 권 계장은 지속적인 폭행과 폭언이 포함된 정신적 지배상태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이 존재했고 이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라는 의심이었다.
조사를 이어갈수록 B 씨의 착취 행위들이 하나씩 베일을 벗었다. A 씨는 2020년 여름 소셜네트워크(SNS) 친목 모임을 통해 B 씨를 처음 만났다. 이후 2021년 12월 소규모 가게를 여는 등 동업을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A 씨의 퇴직금이 모두 B 씨의 아내에게 흘러간 사실이 확인됐다. 사업금 명목이었지만 A 씨는 점포 임차인 보증금 수령인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B 씨 부부와의 동거를 시작한 A 씨는 수천만 원의 대출금을 수차례에 걸쳐 B 씨의 아내에게 전달했다. 더 이상의 대출이 불가능해지자 주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30만 원만 빌려달라. 죽을 것 같다”는 취지로 호소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사망하기 하루 전 마지막 남은 모든 재산을 B 씨에게 송금한 A 씨의 계좌에 남은 돈은 단 오백 원이었다.
권 계장은 “폭행과 착취를 당했을 경우 외부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지만 A 씨는 그러한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미 B 씨의 지속적인 범행으로 인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B 씨에 A 씨에 대한 지속적인 정신적·금전적 착취를 했다는 피해 내용을 보충하고, 피해자가 전 직장에서 성실히 업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정리해 양형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유족들의 심정과 엄벌 탄원 진술들도 포함했다. 1심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10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B 씨의 범행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살인 혐의로 징역 17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해당 사건은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