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글로벌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중소기업은 생존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행사장에서 만난 중소기업 관계자가 한 말이다. 코로나19와 경제 불황의 여파로 힘겨운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중소기업에 ‘글로벌’과 ‘미래’는 먼 나라 얘기라는 의미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문제는 중소기업에 마냥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다국적기업, 국내 대기업 그리고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공급망 구조에서 중소기업에도 ESG에 대한 세계적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ESG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지 1~2년 만에 빠르게 글로벌 기준을 충족해나가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비용·역량·자원 등이 부족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오래전부터 ESG 대응을 준비해온 유럽의 중소기업과 달리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준비할 수 있는 기간도 턱없이 부족해 글로벌 경쟁력도 떨어진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중소기업계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중소기업의 ESG 확산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탄소 중립 산업 생태계 조성’ 예산을 편성해 운용하고 있다. 예산 규모는 지난해 50억 원, 올해 50억 100만 원으로 ESG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작다. 지원이 ESG 인식 개선, 시스템 구축, 가이드라인 개발 등에 한정된 것도 문제다.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공급망실사법’ 등 ESG 관련 글로벌 기준이 마련돼 있는 만큼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진표가 아닌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ESG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와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SG가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대기업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 ESG 관련 전문가는 “국내 대기업이 글로벌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협력사인 중소기업의 ESG 성과가 우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ESG 부문에서는 각자도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ESG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정부를 비롯한 산업계 전체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