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시스템반도체 회사들이 지난 2분기 반도체 불황에도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으로 준수한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SK·LX 등 국내 기업들도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을 고도화하면서 관련 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온세미는 올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차세대 전력반도체로 손꼽히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칩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배 가까이 성장했다고 밝혔다.
온세미 관계자는 “2분기에만 30억 달러(약 3조 8500억 원) 규모의 SiC 칩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온세미는 한국에 SiC 반도체 생산 설비 구축을 위해 1조 400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테슬라에 SiC 칩을 공급하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역시 전력반도체로 재미를 봤다. 2분기의 차량용 반도체는 19억 5500만 달러의 매출을 거뒀다. 지난해 2분기보다 35%가량 늘었다. 중국 전력반도체 업체와 협력을 주저하지 않는 점도 포인트다. 이 회사는 중국 산안옵토일렉트로닉스와 충칭에 최첨단 8인치(200㎜) SiC 웨이퍼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 4분기 가동 예정이다.
시스템반도체 회사들의 ‘효자’ 품목으로 등극한 차세대 전력반도체는 다양한 화학원소들을 결합해서 만든 웨이퍼로 소자를 만든다. SiC·질화갈륨(GaN) 등이 예다. 실리콘 기반 칩보다 열에 강하고 부피를 축소할 수 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22억 7500만 달러 규모의 SiC 칩 시장이 2026년에는 53억 2800만 달러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2026년 시장 규모 중 74%를 자동차용 칩이 차지한다. 현재 차세대 전력반도체는 제조 공정이 까다롭지만 완성차 업체들의 물량 확보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가격도 급등했다.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부에서 전력반도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를 총괄하는 최시영 사장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삼성파운드리포럼에서 “GaN 전력반도체 생산 서비스를 2025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DS부문 내 전력반도체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서 사업성과 기술 고도화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인수합병(M&A)으로 전력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SK실트론은 2019년 미국 듀폰의 SiC 웨이퍼 사업을 통째로 인수한 뒤 2025년까지 약 8200억 원을 투자해 설비 확장에 나선다. LX세미콘·DB하이텍·파워마스터반도체 등 크고 작은 국내 기업들도 SiC 칩 상용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글로벌 칩 회사의 속도감 있는 선행 투자, 중국 전력반도체 업계의 약진과 당국의 갈륨(Ga) 수출 규제 등은 국내 업계 발전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 탓에 중국은 차선책 레거시(옛) 공정을 활용하기 위해 전력반도체를 선택했다”며 “정부가 우리 기업들의 기술 발전을 북돋울 수 있도록 기술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