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 없는 업체에 '가점'…부실 시공땐 '즉시 퇴출'

■뒷북대책 쏟아낸 LH
설계·감리 용역 전담부서도 개편
철근 누락 15곳 관련 업체 수사의뢰
수의계약·퇴직자 관리 문제 여전
"전문가 참여 등 근절방안 찾아야"

사과 인사하는 이한준 LH 사장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2023.8.2 ondol@yna.co.kr (끝)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전관예우’ 문제는 건설 업계의 고질적인 불공정 관행으로 지적돼왔다. 감사원과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지적을 받은 후 LH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관행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이 이번 지하 주차장 붕괴 사건을 계기로 다시 드러났다. 이번에 또다시 LH는 카르텔 척결을 위한 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지만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감사원이 지난해 6월 발표한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월 1일부터 2021년 3월 31일까지 LH의 3급 이상 퇴직자 604명 중에서 LH와 계약 실적이 있는 업체에 재취업한 퇴직자는 304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가 LH와 맺은 용약 계약은 같은 기간 3227건으로 전체(1만 4961건)의 21.6%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업체가 LH로부터 얻은 수익은 9조 9억 원에 달한다.


주목할 점은 LH와 LH 전관 업체 간 계약 3건 중 1건은 다른 업체와의 경쟁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체 계약(3227건) 중 34.1%인 1102건은 수의계약으로 이뤄졌으며 금액으로는 6854억 원으로 나타났다. 수의계약 사유를 보면 전체 1102건 중 217건(19.7%)은 ‘비밀리에 체결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이뤄지며 불공정 문제가 지적됐다. 실제 LH는 주택 지구 지정 제안 등 후보지 관련 용역을 발주하면서 비밀리에 체결할 필요성에 대한 검토 없이 관행적으로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나자 국토교통부와 LH는 전관 업체와의 수의계약을 제한하는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올해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LH 1급 이상 퇴직자가 취업한 건설·엔지니어링 업체를 대상으로 퇴직 이후 1년간 LH와의 수의계약과 경쟁입찰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LH 내부 규정 개정을 이유로 시행에 이르지 못했다. 그사이 LH 고위직 퇴직자가 소속된 A 업체는 7월 LH에서 발주한 ‘건설 사업 관리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따내며 5억 2000만 원 넘는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퇴직자에 대한 관리 공백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국회는 LH에 3급 이상 퇴직자들의 계약 업체 재취업 문제를 지적하며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LH가 2급 이상 퇴직 직원에 대해서만 재취업을 제한하는 등 관리·감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LH는 국회 지적에 대해 “퇴직 직원의 영향력 행사 가능성 등을 고려해 재취업으로 인한 불공정 관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엄정 관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같이 사건 발생→감사원·국감 지적→대책 강구 등이 반복돼온 가운데 LH가 이번에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를 계기로 또다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LH는 이날 건설 카르텔과 부실시공 근절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먼저 경기남부지역본부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반카르텔공정건설추진본부’를 설치해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 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을 근절할 방침이다.


전관이 없는 업체가 LH 사업에 참여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한준 LH 사장은 “시공사·설계사·감리사까지 LH 사업에 참가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전관 목록을 모두 사업제안서에 기록해 제출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전관 업체에 감점을 주는 것은 형평성상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전관이 없는 업체에 일정한 가점을 주는 방안도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부실시공을 유발한 설계·감리·시공 업체에 대해서는 적발 시 바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LH 내부적으로 감리 용역 전담 부서를 개편하고 감리사 현장 관리 조직을 의무화한다.


부실시공 관련 업체와 관련한 민형사 조처도 이뤄진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무량판 구조 철근 누락 15개 아파트 단지의 설계·시공·감리 관련 업체와 관련자를 4일 경찰청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업체의 책임이 드러나면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다. 또 전관 업체 간 담합 의혹에 대해서는 정황이 의심되면 즉시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부실시공 문제가 제기된 15개 단지의 무량판 구조와 관련해서는 입주민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보강 공사를 실시한다.


다만 업계는 이번 고강도 혁신안이 일선 현장에서의 변화로 이어질지 회의적인 반응이다. 신영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은 “단기적으로는 LH 전관 특혜 문제가 줄어들 수 있지만 LH가 최대 발주 기관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최소한 국무총리실 이상 기관 내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별도 조직을 마련해 국민이 안심하고 신뢰할 때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니터링하고 근절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감사원은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로 불거진 ‘철근 누락 아파트’ 논란과 관련해 LH에 대한 감사를 검토 중이다. 지난달 31일 경실련이 공익 감사 청구서를 제출했고 감사원의 담당 부서가 감사 착수 요건을 검토하고 있다. 경실련은 공익 감사를 청구하면서 이번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 LH 출신 인사를 설계·감리 업계가 영입해 유착하는 특혜에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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