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직 제안이 들어오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오히려 그런 기회조차 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중앙 부처의 한 간부가 이 같은 속내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공직 생활을 통해 쌓은 경험을 ‘큰물’에서 적용해보고 싶다”며 “사명감이 엷어진 게 아니라 그게 국익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공직 사회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민간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고를 치고 등 떠밀리듯 관복을 벗던 얘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자발적으로 사표를 쓰는 국가·지방 공무원은 2017년 1만 1690명에서 2022년 2만 1248명으로 5년 만에 80% 넘게 늘어났다.
공무원들의 이직 행렬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1년 새 스타트업 등 민간 기업으로 떠나는 공무원이 5배가량 급증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포모(FOMO)증후군’을 호소하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Fear Of Missing Out’의 준말인 포모는 세상의 흐름에서 자신만 제외되고 있다는 고립 공포증이다. 흔히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할 타이밍을 놓쳤을 때 느끼는 감정인데 공무원들은 향후 진로를 놓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시 선후배와 동기들이 높은 ‘몸값’을 인정받고 민간으로 나가는데 나만 하릴없이 공직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특히 장밋빛 미래가 점쳐지던 ‘에이스’들의 이탈 소식에 동요가 더 심해지고 있다. 관가에서는 능력 순으로 승진하는 시대는 가고 능력 순으로 퇴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자조 섞인 푸념마저 나온다. 공직을 떠나서 민간에 자리 잡을 시기를 놓치지 않았는지 스스로 되묻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건 분명 공직 사회에 좋지 않은 신호다.
공직 사회의 퇴사 러시를 ‘직업 선택의 자유’로만 치부한 채 마냥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다. 공직 사회에 포모증후군이 고착화될수록 결국 국가 정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전임 정부의 주요 정책 담당자에 대한 과도한 문책과 개선되지 않는 처우가 공무원의 사기를 꺾고 있는 게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루라도 빨리 공직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고 복지부동으로 버티는 게 그다음이라는 한 관료의 하소연이 씁쓸하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