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전자 부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산업에서 전장용 제품의 존재감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MLCC는 전자제품 회로에서 전류가 안정적으로 흐르도록 제어하는 제품이다. 주로 스마트폰·PC 등 정보기술(IT) 기기 탑재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자율주행·전기차 등 미래차 산업에서 전장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전장용 MLCC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주요 MLCC 업체들의 전체 매출에서 전장용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제히 상승했다.
1위 업체인 일본 무라타의 2분기 전장용 부품 매출액은 996억 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했다. 매출 비중 역시 27.1%로 전년 동기(19.5%)와 비교해 8%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일본 TDK의 MLCC 사업 내 전장용 매출액은 역대 최대인 667억 엔을 기록했다. 매출 비중도 22.2%로 늘었다. 삼성전기(009150)도 전장용 MLCC의 매출 비중이 2021년 한 자릿수 후반에서 올해 2배 이상 상승했다고 공개했다.
전장용 MLCC는 고온·고압 환경에서도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IT용 MLCC보다 가격이 2~3배 비싸다. 내연기관차에는 3000~5000개가 필요하지만 전기차·자율주행차에서는 그 수가 4~5배까지 증가한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부품사는 전장용 시장에서 전통 강자인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을 빼기 위한 채비에 나섰다. 삼성전기는 전기차에 탑재되는 세계 최고 용량의 MLCC를 출시하며 프리미엄 라인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범용보다는 인포테인먼트, 첨단주행보조시스템(ADAS), 파워트레인용 MLCC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키워간다는 전략이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전장용 MLCC 시장에서 삼성전기는 4% 점유율에 그쳤지만 올해는 13%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업체들도 공격적인 시설 투자로 대응하고 있다. 무라타는 필리핀에 112억 엔을 투자해 새 MLCC 제조 거점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설 투자 배경으로 전기차와 차세대 6G 관련 수요 증가를 꼽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전장 제품 생산 거점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IT용 MLCC의 바닥이 확인된 것이라면 다음 전장(戰場)은 전장(電裝)일 것”이라며 “무라타·삼성전기 모두 차량의 전동화, 자율주행 고도화로 모빌리티향 매출이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