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백병원의 폐원을 둘러싼 경영진과 내부 직원들의 갈등이 결국 법정으로 간다.
4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는 "오늘(4일) 오후 서울행정법원에 서울백병원의 폐원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법률대리인으로 법률사무소 고유와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를 선임했다. 서울백병원의 폐원을 반대하는 교수 24명과 간호사, 행정직 등 일반 직원 240여 명이 소송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가정의학과 교수)은 "법률대리인과 함께 검토한 결과 학교법인 인제학원의 폐원 의결 과정이 사립학교법과 정관을 위배하기 때문에 효력을 가질 수 없음을 확인했다"며 "직원들을 일방적으로 부산 지역에 전보 발령내리는 것 역시 근로기준법에 반하는 것임을 가처분 신청서에 명시했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 교수와 일반 직원 60여 명은 이날 오후 5시께 병원에서 출발해 2km 남짓 떨어진 ‘가회동 백인제 가옥’까지 가두시위를 벌이고 가회동주민센터 앞에서 학교법인 인제학원을 향해 "병원은 병원다워야 한다. 환자들에 대한 배려 없는 병원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환자들을 위한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교직원은 이삿짐이 아니다. 교직원의 불안을 해소하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상식적인 대안을 당장 제출하라"며 "인술제세, 인덕제세라는 백인제 정신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깊이 반성하라"고 외쳤다.
서울 중구에 유일한 대학병원인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은 지난 6월 폐원을 공식화했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은 지난 2004년 73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이래 줄곧 적자를 지속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려 왔다.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가동하며 방법을 강구해 봤으나 누적적자가 1745억 원에 달해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게 재단 측 입장이다. 인제학원 관계자는 "2004년 중앙대필동병원에 이어 2008년 이대동대문병원, 2011년 중앙대용산병원, 2021년 제일병원 등이 그랬듯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주변 거주 인구가 줄고 인근 대형병원들로 환자가 쏠리면서 경영상태가 악화일로를 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경영상 문제로 폐원이 불가피하더라도 이를 진행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난 5월 31일 서울백병원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가 폐원 안을 법인 이사회에 상정하기로 결정하고, 6월 20일 이사회에서 폐원을 의결한 다음 오는 8월 31일 진료 종료를 통보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서울백병원은 외과의사인 백인제 박사가 1941년 백인제외과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데서 뿌리를 두고 있다. 백 박사는 현 서울백병원 위치에 의원을 차린 지 5년만인 1946년 12월 모든 사재를 기부해 국내 최초의 민립공익 법인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탄생시켰다.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가회동 소재 가옥은 현재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들 단체가 기자회견 장소를 가회동으로 정한 것도 82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백병원의 상징성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조 회장은 "경영진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이 교수들은 개원을 준비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등 뿔뿔이 흩어지고 있어 정확한 사직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들다"며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폐원 시점을 못박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타 병원 전원을 위해 진료의뢰서를 받지 못한 환자가 아직도 5000명이 넘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수십년을 병원에 헌신했는데 일순간에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느낌"이라며 "교직원들은 그동안 법인과 병원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을 뿐인데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억울하다"고도 털어놨다.
이들은 오는 31일로 정해진 폐원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조 회장은 "지금까지 법인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는데, 가처분신청서를 작성하며 마지막에 역전타를 날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됐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절실함을 가지고 폐원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