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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 드라마(by KBS) 촬영을 위해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일부러 고꾸라트린 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말의 이름은 까미.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KBS는 사과에 이어 작년 7월 동물보호를 위한 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개했습니다. 그렇게 '뭔가 바뀌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까지도 미디어 제작 과정에서의 동물 학대는 계속되고 있다는 게 동물단체들의 지적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5월 방영된 드라마 '장미맨션'에는 등장인물이 빗속에서 고양이를 칼로 살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양이는 원체 물을 싫어하는 동물인데 물에 젖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에게 목덜미를 잡혀 공중에서 발을 허우적댑니다. 앞발을 내밀어 모조품 칼을 밀어내기도 하고요. 이 장면은 시청자들의 비판 끝에 삭제됐습니다.
까미의 죽음 이후 1년도 더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동물자유연대에 물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장은 “대중의 인식은 달라졌으되 바뀐 것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구용 : 까미 사건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진아 팀장 : 확실히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졌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컴퓨터그래픽(CG)로 제작한 장면인데도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이 저희에게 제보를 주시기도 하고요. 시청자분들은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업계의 변화는 크게 체감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작년 6월에 미디어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의 초안을 내놓았는데 여전히 최종본도 안 나왔고요.
1년이 지났는데 초안 이후로 거의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워낙 농림부에서 많은 일을 하시고, 공무원 한 분이 여러 일을 담당하시긴 합니다. 아쉬운 건 까미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컸는데 법과 제도는 사실상 변하지 않았단 사실입니다. 농림부에서 가이드라인 최종본을 만들겠다고 꾸준히 밝히시고 있긴 하지만요.
▶미디어 업계가 바뀌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뭘까요?
: 촬영 현장 자체가 열악합니다. 사람에게도 열악한 환경인데 동물까지 챙기겠냐는 거죠. 그리고 업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발이 있고요. 하지만 어떤 콘텐츠도 생명보다 중요할 순 없습니다. 공익적인 보도라도 그 파장이 동물이나 사회적 약자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조심해야죠. 오락이나 예능 목적이라면 굉장히 주의를 기울이는 게 맞습니다.
결국 업계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물 촬영 관행이 개선된다면 다른 부분들도 다같이 좋아지겠죠. 동물 촬영 환경이 좋아진다고 해서 촬영 스탭들의 환경이 나빠지는 게 아닙니다.
▶작년에 KBS도 미디어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을 냈는데요. 어떤 부분이 부족해 보이셨나요?
: 예를 들어 까미 문제도 있었고 해서 말에 대한 부분은 많이 포함돼 있긴 한데, '채찍 같은 도구를 인도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한다'는 정도로 애매하게 적혀 있습니다. '동물의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더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원숭이 같은 영장류에 대한 내용이 보완돼야 할 것 같습니다.
또 가이드라인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게 관건인데, 촬영 현장에서 어떻게 가이드라인을 지켰는지 기록하고 문서화한단 내용이 없습니다. 동물단체들이 촬영 현장에 가서 모니터링할 수도 없다 보니 이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도 없고요.
◆미국 인도주의 협회(AHA)의 가이드라인 훑어보기
해외 영화 크레딧에 ‘No Animals Were Harmed(이 영화의 제작과정 중 어떤 동물도 다치거나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란 문구가 기억나시나요? 이 문구는 AHA의 가이드라인을 따랐다는 의미입니다. AHA의 가이드라인은 이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그늘과 쉘터가 제공되어야 하며 더운 계절에는 가장 더운 시간대를 피해 아침 또는 늦은 오후에 촬영해야 함(겨울에는 가장 따뜻한 시간대)
-복수의 동물이 함께 촬영한다면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주어져야 함
-촬영한 시간 이상으로 휴식 시간이 주어져야 함
-AHA 관계자가 직접 촬영현장을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촬영을 중단할 권한을 가짐
-촬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반드시 수의사가 있어야 하고, 가까운 곳에 수의사가 없는 지역이라면 촬영장에 상주하며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함
-위험한 촬영을 할 때는 모형 또는 이미 죽은 동물(콘텐츠 제작을 위해 살해하지 않았으며 적법한 도축 과정을 거쳤다는 증명서 필요)을 이용. 죽은 동물의 경우 촬영이 끝난 후 적법하게 화장 또는 매장해야 함
※우리나라의 동물권행동 카라에서도 이미 2020년 11월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개, 고양이, 새, 말, 어류뿐만 아니라 곤충과 거미류까지 종별로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제시.
사회적 인식은 달라졌는데 제도가, 업계 관행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이제 시민들의 임무는 '독촉하기'일 겁니다. 왜 바뀌지 않냐고 비판하고 독촉해야 하는 시점. 정 팀장도 "시청자 분들께서 점점 날카로운 시각으로 봐 주시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자유연대의 미디어 출연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 촉구 캠페인 링크 남깁니다. 페이지 맨 끝에 서명해 주시면(10초 소요) 정부에 전달돼서 효과적인 독촉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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